[이종묵의 ‘한시 마중’]<22>흰머리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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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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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이상은(李商隱)이라는 시인이 “새벽 거울에 고운 머리 센 것이 근심스러운데, 밤에 시를 읊조리다 보니 달빛이 차구나(曉鏡但愁雲빈改, 夜吟應覺月光寒)”라는 유명한 구절을 남겼습니다. 나이가 들기 시작하면 거울 보기가 무서우니 바로 날로 많아지는 흰 머리카락 때문입니다. 신라 말의 문인 최광유(崔匡裕) 역시 “센 머리 시든 얼굴에 새벽 거울이 새로워라(빈改顔衰曉鏡新)”라고 하였지요. 그래서 옛사람들도 늙은 모습을 감추려고 거울을 보면서 흰머리를 뽑았고, 심지어 다시는 흰머리가 돋지 않도록 뽑은 흰 머리카락을 매장하고 장사까지 지냈나 봅니다.

그러나 늙음은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장지완(張之琬)이라는 시인이 그런 뜻을 시에 담았습니다. 장지완은 순조 연간 율과(律科) 출신의 중인(中人)인데 그 생애가 자세히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당대에는 시로 꽤 명성을 날렸던 사람입니다. 그는 백발이 싫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머리가 셀 때까지 살지 못한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목숨을 부지한 것 자체가 행복이라는 말이지요. 이래야 마음이 편합니다.

억지로 흰 머리카락을 뽑고 검게 물을 들이는 일은 백발에 꽃을 꽂는 일입니다. 소동파(蘇東坡)가 “사람은 늙어서도 꽃 꽂는 것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꽃은 노인 머리에 오르는 것 창피해 하겠지(人老簪花不自羞, 花應羞上老人頭)”라 한 것이 그 때문입니다. 늙음을 탄식하던 김창흡(金昌翕)이 늙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늙음을 잊으면 노망이 든 것이요, 늙음을 탄식하면 추한 것이다”라고 한 말이 슬프고 무섭습니다. 그러니 한 해가 또 가고 한 살 나이가 든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시#흰머리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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