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묵의 ‘한시 마중’]<21>붉게 터진 홍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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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 참 예쁩니다. 늦봄 속살 같은 빛깔을 드러내는 조그마한 꽃, 늦은 가을 울긋불긋하게 물든 단풍잎은 참으로 곱습니다. 게다가 서리 맞아 붉게 익은 홍시는 맛까지 좋습니다. 고려의 문호 이규보(李奎報·1168∼1241)도 홍시를 무척 좋아하였습니다. ‘시골 사람이 홍시를 보내었기에(野人送紅枾)’라는 시에서 “꿀이나 엿, 우유처럼 맛이 좋기에, 우는 아이도 달래어 웃게 한다네(味如飴蜜還如乳, 解止兒啼作笑媒)”라 하였으니 그 맛을 사랑한 것이 분명합니다. 이규보가 붉은 비단 같은 껍질이 터지고 홍옥(紅玉)의 진액이 흐르는 홍시를 입술에 대었을 때의 흥분이 느껴집니다. 그 맛은 조선 초기의 시인 유방선(柳方善)의 시구 “입술에 대면 껍질이 절로 터지고, 이빨에 닿으면 맛이 더욱 달다네(近唇皮自坼, 천齒味殊甘)”에서도 느껴집니다.

이 무렵 이규보는 나이가 일흔이 넘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워낙 술을 좋아했고 이 무렵에도 건강 때문에 자제하기는 했지만 술을 끊지 못했습니다. 술을 먹고 나면 아침이 편했을 리 없었겠지요. 게다가 당뇨까지 있었으니 목이 무척 말랐을 겁니다. 그런 이규보에게 홍시가 얼마나 맛이 있었겠습니까? 병마에 찌든 얼굴이 절로 펴졌을 것입니다. 서거정(徐居正)은 “부드러워 당뇨를 멎게 하겠고, 달아서 두통을 낫게 하겠네(軟宜消渴病, 甛可愈頭風)”라고 하였고 임억령(林億齡)은 “입술에 닿자 한입에 쑥 들어오니, 마른 폐가 이제 다시 기뻐한다네. 입에 맞아 절로 신선의 약이라, 누가 체증이 생긴다 하였던가(當唇快一吸 肺渴今復喜 適口是仙藥 誰云爲滯氣)”라 하였습니다. ‘동의보감’에도 홍시가 숙취를 풀어주고 심장과 폐를 튼튼하게 하며 갈증을 없애주고 소화 기능을 좋아지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하였으니, 가히 만평통치약이라 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에게 글로나마 부드러운 홍시 하나 바칩니다.

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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