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묵의 ‘한시 마중’]<20>서리같이 맑은 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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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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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지막이 귀가를 서두르다 마천루 위에 떠오른 둥근 달을 보노라면 오늘이 음력 며칠인지 궁금해집니다. 오늘은 음력 시월 보름입니다. 보름달도 계절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집니다. 시월의 보름달은 새벽녘에 보면 그 맑음이 뼈에 사무칩니다.

이 작품은 이행(李荇·1478∼1534)이 1531년 53세의 나이로 좌의정으로 있을 때 지었습니다. 저녁에 가랑비가 한 바탕 뿌리고 바람이 지나가자 밤안개가 말끔히 걷혔습니다. 한숨 자고 새벽에 일어나 보니 어디선가 종소리가 은은히 들려옵니다. 갑자기 한기가 뼛속으로 파고듭니다. 바깥을 내다보니 온 땅에는 서리가 하얗게 덮여 있고 하늘에는 밝은 달이 둥그렇게 떠 있습니다. 서리와 달빛의 맑은 기운이 한기로 변했나 봅니다. 시에서 이른 소아(素娥)는 달에서 산다고 하는 여신인데 불사약을 훔쳐 달로 도망가 그 때문에 달빛이 하얘졌다고 합니다. 청녀(靑女)는 서리와 눈을 관장하는 여신입니다. 소아와 청녀가 서로 고움을 다투니 그 때문에 서리가 희고 달빛이 밝아 온 세상에 맑은 빛이 가득하게 된 것이지요. 뼛속까지 스민 것은 추위가 아니라 맑은 기운인 것이지요.

하얀 서리와 맑은 달빛 ‘상월’이라는 제목의 한시 가운데 18세기 전후한 시기의 문인 이진망(李眞望)이 “달빛 같은 서리에다 서리 같은 달빛이, 온 골짜기에서 뒤섞여 밝은 빛이 되었네. 한밤중 창을 여니 바람이 얼굴을 스치는데, 우뚝 높은 흥이 일어 술 한잔 찾노라(嚴霜如月月如霜 一壑渾成皎皎光 中夜開窓風(사,새,선,세,쇄,최)面 居然高興却呼觴)”라고 하는 것 역시 맑음이 뼛속까지 이를 듯합니다. 오늘 밤에는 창을 열고 서리 같은 달빛을 보시고 맑은 기운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시#서리#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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