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9월 25일∼11월 30일)가 열리고 있는 쌍신생태공원에 선보인 프랑스 작가 테네울 티에리의 ‘회오리’. 나무의 영혼에서 점점 넓어지는 에너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자연의 소리를 듣다’를 주제로 열린 야외전에는 독일 루마니아 오스트리아 등 외국 작가 16명과 한국 작가 11명이 참여했다. 공주=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작은 배가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을 우두커니 바라보고만 있다. 초록 풀이 돋아난 버드나무 가지로 얼기설기 만든 배는 물에 뜨지 못한다. 대신 배에 오르면 하늘과 독대하거나 물의 속삭임을 듣는 등 자연과 더 친해질 수 있다.
백제의 고도인 충남 공주시를 가로지르는 금강(錦江)의 쌍신생태공원. 이곳서 열리는 2012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에 선보인 린덴바워 알로이스의 ‘성장하는 배’란 작품이다. 오스트리아에 전해오는 ‘풀이 자라는 소리를 들어보라’는 이야기를 직접 체험하는 공간이다. 이 작품을 거쳐 백제대교까지 1.4km 흙길을 따라 자연을 화두로 한 국내외 작가의 27개 작품이 자리 잡았다. 다 돌아보는 데 1시간 반가량 걸리는데 날씨 변화와 아침부터 석양까지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으로 인해 작품은 그때그때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2004년 시작해 5회째를 맞은 이 비엔날레의 주인공은 예술이 아닌 자연이다. 우쭐대며 자기 존재감을 내세우기보다 재료와 형태가 자연 속으로 은은하게 스며든 작업이 많다. 그 겸손함이 빚어내는 울림이 깊다. 고승현 운영위원장은 “자연은 이미 완벽한데 어떻게 더 아름답게 꾸밀 수 있겠는가. 우리 비엔날레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자연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교량 역할을 할 뿐”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소리’를 주제로 평론가 윤진섭 씨가 총감독을 맡았다. 야외전과 별도로 ‘대지적 사유’를 주제로 실내전도 열렸다. 공식 일정은 30일 끝나도 야외작품은 아무 때나 감상할 수 있다.
○ 사람과 자연을 이어주는 다리
고승현 씨의 ‘백년의 소리-가야금’.비엔날레의 작품들은 거창한 규모로 자연에 대한 폭력적 접근을 시도하는 물량 중심의 대지미술과 차별화된다. 자연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자연과 인간의 틈새를 벌려놓았던 걸림돌을 치워 원래 있던 길을 복원하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미술 애호가가 아닌 산책 혹은 운동 나온 사람들도 마음 내키는 만큼 작업에 다가설 수 있다. 오래된 나무의 형태를 오롯이 살린 가야금도 튕겨보고, 바람의 호흡소리를 내는 대나무도 불어보고, 공중에 매달린 정원에 머리만 들이밀고 대화도 나눌 수 있다.
커다란 돌을 나무토막으로 쓸어내려 만드는 소리, 펌프에 마중물을 부어 흘러내린 물이 강물과 몸을 합치는 소리 등 예술과 자연이 합작한 소리와 더불어 1500명 아이들이 매단 작은 종들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한데 어우러진다. 번잡한 도시 생활을 잠시 잊게 하는 순간이다. 작품 감상과 더불어 두더지가 땅을 파고 지나간 흔적, 억새풀이 강바람에 소곤대는 소리를 보고 듣는 것은 덤이다.
○ 지역 미술과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
오스트리아 작가 린덴바워 알로이스의 ‘성장하는 배’.‘자연미술’을 표방하는 비엔날레는 공주에서 활동해온 한국자연미술가협회-야투(野投)의 지역작가들이 꾸려온 국제행사다. 야투는 1981년 빈 몸, 빈 마음으로 자연의 품으로 들어가 자연과 더불어 작업한다는 정신에서 출발했다. 서울 중심의 주류 미술계는 야투 활동을 철지난 운동처럼 폄훼했으나 꾸준한 국제 교류전과 원골의 국제창작공간 운영을 통해 국제자연미술운동의 원조 격으로 인정받고 있다.
고 위원장은 “자연미술운동이 비엔날레라는 제도권적 형식의 틀에 갇히면서 시행착오와 홍역을 치렀다”며 “초기의 순수성을 지키는 활동과 함께 자연과 인간의 평화로운 관계 회복을 위한 글로벌 노마딕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국내 미술계의 냉대와 무관심에도 위기에 처한 자연의 신음소리를 일깨우는 지역작가들의 활동은 30년간 묵묵히 지속됐다. 이들의 자연미술운동이 한때의 유행일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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