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카우치 서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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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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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젊은 예술가들의 부담없는 팁
무료숙식 제공받고 살가운 문화 스킨십

한국의 인디 밴드들은 3월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 인근 리치 칼턴 씨의 창고에서 공연하고 바비큐 파티를 즐겼다. 밴드 갤럭시익스프레스, 옐로우몬스터즈, 크라잉넛, 3호선 버터플라이 멤버들이 공연 뒤 현지 주민들과 한데 어울렸다. 러브락컴퍼니 제공
한국의 인디 밴드들은 3월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 인근 리치 칼턴 씨의 창고에서 공연하고 바비큐 파티를 즐겼다. 밴드 갤럭시익스프레스, 옐로우몬스터즈, 크라잉넛, 3호선 버터플라이 멤버들이 공연 뒤 현지 주민들과 한데 어울렸다. 러브락컴퍼니 제공
“나랑 여기 있는 싸이는 캘리포니아에서 4일을 함께 보냈다. 우리는 친구가 됐고 …. 싸이, 미래를 위해 벽을 허물자.”(스쿠터 브라운)

‘강남스타일’ 열풍이 빌보드 차트나 미국 TV 방송 등 현지 주류 매체에 입성한 데는 팝스타 저스틴 비버의 매니저 스쿠터 브라운의 덕이 컸다. 브라운이 트위터에서 ‘강남스타일’을 언급하며 유튜브 동영상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싸이가 8월 말 직접 미국으로 날아가 로스앤젤레스 브라운의 자택에서 함께 생활하며 ‘끼’를 유감없이 보인 것이 계약으로 연결됐다.

예전 한국 문화의 세계 진출은 공식 경로 위주였다. 때로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이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싸이의 사례에서 보듯 오늘날 양국의 문화인들이 실제로 충돌하고 섞이는 지점은 ‘밥상머리’나 ‘잠자리’다.

최근 젊은 예술가나 인디 뮤지션들 사이에서는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형 문화교류가 늘고 있다. 소파(couch)와 파도타기(surfing)를 결합한 이 말은 낯선 사람의 집을 돌며 숙박을 해결하는 여행을 말한다. 숙소를 제공할 사람과 원하는 사람을 연결하는 웹사이트 ‘카우치서핑닷컴’이 인기를 끌면서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새로운 여행방식으로 떠올랐다. 여기에 젊은 문화예술인은 숙식 해결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 떠들썩하게 지내다 ‘교류 초청’

미국인 션 메일런 씨의 서울 대림동 빌라는 해외 인디 뮤지션들의 카우치 서핑으로 국제적 명소가 됐다. 2009년 11월 미국 인디 록 밴드 야트가 이곳에 묵으며 함께 찜질방도 가고 밥도 해먹은 게 시작이었다. 메일런 씨는 해외 인디 뮤지션의 내한공연을 주최해온 국내 공연기획사 슈퍼컬러슈퍼의 공동 대표다.

허지영 슈퍼컬러슈퍼 공동대표는 “처음엔 경비 절약 차원이었는데 외국 뮤지션들과 집에서 살을 맞대며 더 밀접한 교류를 하게 됐다”면서 “호텔만큼 쾌적하지는 않지만 독특한 한국 체험에 뮤지션들도 즐거워한다”고 했다. 프렌치 혼 리벨리언, 맥스툰드라, 투 갤런츠 등 다양한 해외 뮤지션이 ‘메일런 씨 댁’ 신세를 졌다.

지난여름 미국 순회공연을 떠난 국내 인디밴드 크라잉넛과 갤럭시익스프레스 멤버들은 한 농장 창고를 찾았다. 크라잉넛 멤버 한경록은 “열악한 현지 클럽 순회공연에 지쳐갈 때쯤 ‘리츠칼턴’에 공연하러 간다고 해서 호텔인 줄 알고 들떴는데 가보니 현지 시골 농장주 리치 칼턴 씨 댁 창고였다”면서 “마을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고 함께 바비큐 파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인근 한인의 집에 머물며 미국 밴드와 뒤섞여 떠들썩한 밤을 보냈다. 크라잉넛은 귀국 후 이 미국 밴드를 한국에 초청했다. ‘칼턴 씨 댁’은 2010년부터 한국 밴드들의 미국 내 베이스캠프 역할을 해왔다.

캐나다 옐로나이프에 있는 셜리 아주머니(앞줄 가운데) 댁에서 숙식을 제공받는 신세를 진 여행객들. 11월 초에 사흘 동안 이곳에 머무른 이들은 이 같은 사진 촬영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한영준 씨 제공
캐나다 옐로나이프에 있는 셜리 아주머니(앞줄 가운데) 댁에서 숙식을 제공받는 신세를 진 여행객들. 11월 초에 사흘 동안 이곳에 머무른 이들은 이 같은 사진 촬영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한영준 씨 제공
○ 가상세계에서 현실의 소통으로

사진작가 한영준 씨(28)는 20대 후반의 나이에 벌써 일본 영국 프랑스 호주 필리핀 스웨덴 인도 캄보디아 등 20여 개국을 여행했다. 여기서 찍은 사진들로 올 7, 8월 서울과 부산, 전북 전주에서 사진전을 열었다. 비결은 카우치 서핑에 있었다. 단돈 4만 원 들고 88일간 유럽을 돌기도 했다. 한 씨는 “영국에서는 대학교수 집에 머물기도 했고, 프랑스에서는 젊은 음악가의 집에서 하루 종일 재즈 연주를 듣기도 했다”면서 “고추장을 들고 가 한국 요리를 해주거나 사진을 찍어주며 친밀감을 쌓았다”고 전했다.

한 씨는 카우치 서핑을 ‘공짜 여행’으로 취급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조언했다. 현지인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 그는 “인도에서는 타지마할을 방문하는 대신에 카우치 서핑 거처인 구디아네 식구들과 함께 지내며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알게 됐다”며 웃었다. 8월 단돈 30만 원을 들고 캐나다로 떠난 한 씨는 현지 한국인의 집에서 두 달째 카우치 서핑 중이다.

살사 댄서인 오지연 씨(30·챔피언살사아카데미 원장) 집은 일 년에 서너 차례 외국 손님을 맞는다. 외국 살사댄서들이 한국에 공연하러 올 때마다 오 씨 집에서 신세를 지고 간다. 숙박비는 받지 않는다. ‘살사에 대한 열정’으로 서로 통했기 때문. 오 씨는 “아시아권에서는 한국의 살사 실력이 월등해 주로 일본 댄서들이 한국에 살사를 배우러 오는데 같이 찜질방도 간다”며 “페이스북 등을 통해 외국 친구들과 언제 어디서든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어 더 친근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는 “카우치 서핑형 문화교류는 디지털시대 가상 세계에서의 소통이 가져온 결핍과 공허감을 도리어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개입한 디지로그 방식으로 풀어가는 좋은 예”라면서도 “현지에서 맞닥뜨릴 문화적 충돌을 헤쳐 나갈 지혜 역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희윤·황인찬 기자 imi@donga.com
#카우치 서핑#무료 숙식#해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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