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최장락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장이 들려주는 덕수궁 복원 비화
30년 경력 복원전문가… 기술직 첫 소장 부임
최장락 신임 국립나주문화재 연구소장은 “호남 지역에 산재한 문화유적의 조사 연구를 통해 고대 마한문화의 성격과 실체를 규명하겠다”고 말했다. 나주=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덕수궁 중화문에서 중화전에 이르는 중심축은 옛 모습대로 바로잡힌 건 아닙니다.”
지난달 29일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산하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장으로 임명된 최장락 소장(59)은 30년 넘게 굵직한 복원 현장을 지켜온 복원 전문가다. 1983년 창경원을 창경궁으로 복원할 때 동물사와 식물원, 벚꽃나무를 철거했고 1984년 덕수궁 정전인 중화전의 중심축을 바로잡아 정비했다. 최근에는 경복궁 복원 및 창경궁과 종묘 연결 사업을 추진했다. 그런 최 소장이 ‘조선 왕궁 복원사’로서 그의 주요 이력인 중화전 축 교정이 잘못됐다고 지적한 것이다. 사연은 이랬다.
대한제국은 1910년 덕수궁 정전인 중화전 옆에 한국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을 세웠다. 하지만 일제는 석조전 앞에 거대한 정원을 만들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과거 막부가 신성시하던 곳에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짓고 공원 등을 조성해 훼손하곤 했다. 이를 식민지 조선에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석조전 축에 맞춰 정원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중화전 회랑 기단석 등 유구(遺構)가 걸리자 이를 헐어낸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정원 쪽 유구가 사라지면서 중화전은 전체적으로 기울어진 모양새가 됐다.
“회랑 유구를 옛 모습대로 복원하면 석조전 앞 정원을 훼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석조전과 정원도 근대 유산으로서 의미가 있죠. 그래서 정원을 훼손하지 않도록 폭이 2.4m인 회랑 유구의 안쪽 선을 기준으로 기단석을 설치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비록 옛 모습은 아니지만 중화전 축이 바로 섰고 그 일대가 대칭을 이루게 됐죠.”
명지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후 1980년 기술직으로 공직에 발을 디딘 그는 기술직으로는 처음으로 국립문화재연구소 산하 지방연구소장이 됐다. 건축문화재 수리 및 복원을 주로 맡아온 그가 고분군 발굴 및 연구가 주 업무인 지방 연구소장에 임명되자 뒷말이 나왔다. 최 소장은 “복원과 발굴은 결국 같은 것을 지향한다”며 일제가 없앤 창경궁 명정전 회랑을 복원할 때의 경험을 들려줬다.
“회랑으로 둘러싸인 내정(內廷)은 빗물이 고일 수밖에 없어요. 배수 장치를 고민하던 중 ‘옛 사람들도 지하에 암거(暗渠·땅속 배수로의 일종)를 만들지 않았을까’ 싶었죠. 그래서 바닥을 파보니 지하 3m 부근에 암거가 있었습니다. 복원에 앞서 항상 발굴조사를 해 옛 유구를 찾는데, 그때마다 옛 사람들의 지혜에 놀라곤 합니다.”
옛 흔적을 발굴하고 연구하며 이를 되살리는 작업은 결국 다 맞물려 있다는 설명이다.
최 소장은 “연구직은 고도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반면 자칫 한 분야에만 매몰될 수 있지만, 오히려 나는 편견 없이 조정자 역할을 더 잘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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