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집요한 실험정신… 한 걸음 더 멀어진 대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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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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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성북동비둘기의 ‘헤다 가블러’ ★★★

연극 ‘헤다 가블러’. 극단 성북동비둘기 제공
연극 ‘헤다 가블러’. 극단 성북동비둘기 제공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공연을 보러 가는 날엔 날씨가 화창한 게 좋겠다. 대학로 중심에서 동떨어진 외곽인 데다 건물 지하 공간을 활용한 공연장이 음습해 특히나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발길이 꺼려지기 때문이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고전을 비틀어 온 김현탁 씨가 이끄는 극단은 이 그늘진 공간에서 고전을 해체해 재구성하는 나름의 연극적 실험을 꾸준하게 펼쳐왔고 지난해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동아연극상 새개념연극상을 받았다.

이들의 실험 정신은 집요한 데가 있는데 이번에 새로 내놓은 ‘헤다 가블러’는 대중의 취향으로부터 한 발짝 더 멀어진 느낌이다. 그런데도 공연 기간을 두 달 가까이 잡았으니 배짱 한번 두둑하다.

공연은 헨리크 입센의 동명의 희곡을 이야기의 뼈대만 남기고 해체해 원작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주체적 여성의 상징과도 같은 여주인공 헤다 가블러(연해성)를 실험실에 묶어 놓은 뒤 그의 주변인들은 흰 가운을 입은 실험자가 되어 헤다를 자극하고 반응을 살핀다.

원작에선 매력적이며 주체적인 여성인 헤다가 평범한 남편 테스만과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저택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하지만 인간관계도, 삶도 자기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느낀 순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실험 대상이 되는 여성이 헤다인지 헤다라는 망상에 사로잡힌 광인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공연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은 뚜렷이 감지된다.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에서 주체성은 필연적으로 자기파멸을 부른다는 점이다.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무자비한 실험이라는 점에서 통제 불능의 10대 불한당 알렉스를 갖가지 실험을 통해 온순한 양으로 만든다는 내용의 스탠리 큐브릭의 걸작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를 연상시킨다. 현대인들이라면 누구나 어떤 식으로든 제도와 시스템 안에 묶여 있기 때문에 실험 대상 여성은 확대하면 곧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

원작의 내용을 모르는 관객에겐 너무 많은 축약 때문에 한없이 불친절한 공연이다. 원작을 접한 관객이라면 매력적인 헤다에 대한 기대는 접는 게 좋다.

: : i : :

공연 시간은 1시간. 12월 9일까 지 서울 성북동 연극실험실 일상 지하. 1만∼1만5000원. 02-766-1774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공연 리뷰#성북동비둘기#헤다 가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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