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일본군 관사도 문화재?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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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보존 가치 있는 교훈의 장” 주민들 “치욕의 흔적 굳이 왜…”

11억 원을 들여 복원한 서울 마포구 상암동 일본군 관사가 문이 굳게 닫힌 채 방치돼 있다. 이 건물은 치욕스러운 역사를 보여주는 이른바 ‘네거티브 문화재’의 보존과 관리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가진 모순적 시각을 드러내는 사례로 꼽힌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11억 원을 들여 복원한 서울 마포구 상암동 일본군 관사가 문이 굳게 닫힌 채 방치돼 있다. 이 건물은 치욕스러운 역사를 보여주는 이른바 ‘네거티브 문화재’의 보존과 관리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가진 모순적 시각을 드러내는 사례로 꼽힌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1970년대 그린벨트에 묶이고 1990년대 초까지 쓰레기 매립지 인근에 있다는 이유로 이 지역은 개발 열풍에서 벗어나 있었어요. 그랬기에 일본군 관사 22개동이 70여 년 동안 고스란히 보존될 수 있었죠. 간신히 살아남은 이 건물이 지금은 이렇게 방치되어 있네요.”

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아파트 10단지 내 부엉이근린공원. 문이 굳게 닫힌 짙은 갈색의 일본식 단층 목조 건물 2개동 앞에 선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근대건축)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 곤혹스러운 문화재청 등록보류


2005년 11월 마포구 상암2택지개발지구 아파트 단지 지표 조사 과정에서 일본군 관사로 추정되는 건물 22개동이 발견됐다. 당시 지표 조사에 참여한 안 교수는 이 건물들이 1930년대 일본군 경성사단이 위관급 장교를 위해 지은 관사(숙소)임을 밝혀냈다.

공사를 맡았던 SH공사는 이 건물을 문화재청에 신고했고, 문화재청은 2006년 1월 “이 관사는 일본 제국주의의 아시아 침략을 여실히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 보존 가치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SH공사와 문화재청은 일본군 관사 22개동 가운데 2개동을 가까이 있는 지금 장소로 옮겨 복원하기로 결정했다. SH공사는 예산 11억 원을 들여 2010년 9월 복원 공사를 완료했고, 올 초 이 건물을 문화재청에 등록문화재로 신청했다. 문화재청은 4월 5일 근대문화재분과 문화재위원회 검토를 거쳐 같은 달 19일 등록예고를 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일본군 관사 복원 소식이 알려지면서 지역 주민들 사이에 반발 여론이 형성된 것. 상암월드컵파크 10단지 입주자 대표 등의 명의로 이 건물의 문화재 등록을 반대하는 의견이 제출됐다. 건물을 복원 전시하는 데 주민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 자랑스럽지 않은 역사의 흔적을 문화재로 등록해 관리 보존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주된 이유로 들었다. 2010년 10월 일본군 관사 맞은편에 문을 연 일본인 학교 학생들에게 한국에 대한 우월감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도 언급됐다.

문화재청은 결국 6월 7일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통해 보류 결정을 내렸다. 이후 7월 17일 주민설명회를 열어 주민들을 설득했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강한 거부감을 표출하면서 철거를 요구했다. 문화재청은 8월 2일 다시 보류 결정을 내렸다.

○ 市-SH공사-마포구 “난 몰라”


현재 이 건물의 소유자인 SH공사 측은 “올해 말 이 건물에 대한 소유권이 마포구로 넘어가기 때문에 우리는 더는 이 문제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추재홍 마포구 문화체육과 주무관은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는 데다 최근 마포구의회에서 관리 예산마저 삭감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등록문화재로 신청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 역시 시 차원에서 일본군 관사 관리 및 운영에 관여할 필요가 없다는 자세다.

황보영희 문화재청 근대문화재과 위원은 “일제 관련 문화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항상 있어왔다. 하지만 자랑스러운 문화유산뿐 아니라 치욕스러운 역사의 잔재물도 역사적 교훈을 주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제의 만행을 보여주는 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옛 서대문형무소와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등이 이런 ‘네거티브 문화재’로 꼽힌다. 그는 “상암동 일본군 관사가 등록문화재가 된다면 일본군의 대륙 침략을 보여주는 전시실과 주민 편의시설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채널A 영상] 일본군 장교 숙소, 복원해놓고 1년째 폐가처럼 방치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일제강점기#일본군 관사#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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