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인류, 수억년 자연의 지혜를 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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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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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이인식 지음/304쪽·1만6000원·김영사

물총새는 입수할 때 물방울이 튀는 것을 최소화하는 날렵한 부리를 갖고 있다(왼쪽). 물총새의 부리를 본떠 공기저항을 최소화한 일본 고속철도 신칸센의 앞부분. 김영사 제공
물총새는 입수할 때 물방울이 튀는 것을 최소화하는 날렵한 부리를 갖고 있다(왼쪽). 물총새의 부리를 본떠 공기저항을 최소화한 일본 고속철도 신칸센의 앞부분. 김영사 제공
호주와 아프리카 초원에 있는 흰개미집은 산소가 많은 서늘한 공기가 아래로 들어오고, 이산화탄소가 많은 더운 공기는 위로 배출하는 자동 공기 정화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왼쪽) 흰개미집의 환경 친화적인 구조를 본떠 1996년 남아프리카 짐바브웨에 건설된 이스트 게이트센터. (오른쪽) 김영사 제공
호주와 아프리카 초원에 있는 흰개미집은 산소가 많은 서늘한 공기가 아래로 들어오고, 이산화탄소가 많은 더운 공기는 위로 배출하는 자동 공기 정화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왼쪽) 흰개미집의 환경 친화적인 구조를 본떠 1996년 남아프리카 짐바브웨에 건설된 이스트 게이트센터. (오른쪽) 김영사 제공
아프리카 남서부 나미브사막은 건조하기로 유명하다. 물기라고는 한 달에 서너 번 아침 산들바람에 실려 오는 안개의 수분뿐. 그런데 나미브사막풍뎅이는 이 거친 땅에서 끄떡도 없이 잘 산다. 안개로부터 생존에 필요한 물을 얻기 때문이다. 그 원리는 2001년 밝혀졌다.

비밀은 나미브사막풍뎅이의 등짝에 촘촘히 늘어선 돌기들. 돌기의 끄트머리는 물과 잘 달라붙는 성질을 가진 반면 돌기 아래의 홈이나 다른 부분에는 왁스와 비슷한 물질이 있어 물을 밀어낸다. 해 뜨기 직전 바다에서 촉촉한 산들바람이 불어오면 나미브사막풍뎅이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등을 세우고 물구나무를 선다. 안개 속 수증기는 등짝의 돌기 끝부분에만 달라붙는데 수분 입자 덩어리가 점점 커지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돌기 아래는 물을 밀어내는 성질이 있으므로 등짝에 모인 물방울은 자연스럽게 풍뎅이의 입으로 흘러들어간다. 이러한 나미브사막풍뎅이의 집수(集水) 능력은 공항에서 안개를 제거하거나 물이 부족한 지역에 사는 수많은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는 기술로 응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과학 저술가인 저자는 자연이 위대한 발명가이자 인간의 스승이라고 말한다. 수천만 년에서 수억 년 동안 진화를 거쳐 살아남은 동식물의 구조와 기능을 본뜨면 경제적으로 효율적이면서도 환경친화적인 물질을 만들 수 있다. 21세기에 들어와 생물체로부터 영감을 얻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물영감’과 생물을 본뜨는 기술인 ‘생물모방’ 또는 ‘생체모방(바이오미메틱스)’이 각광받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생물영감과 생물모방을 아울러 ‘자연중심 기술’이라고 이름 붙이며 이것이 활용된 사례들을 모았다. 사람의 귀를 모방해 만든 전화기, 수련의 잎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한 1851년 영국 런던 만국박람회의 수정궁, 한해살이풀인 도꼬마리 씨앗에 달린 갈고리 모양의 가시를 본뜬 벨크로(일명 찍찍이), 도마뱀붙이 발바닥의 빨판을 따라 한 접착제, 모기의 바늘을 모방한 무통주사 등 흥미로운 사례들이 가득하다.

저자는 사회성 곤충들의 집단지능에도 주목한다. 흰개미는 진흙에 침과 배설물을 섞어 3∼4m에 이르는 거대한 둔덕을 쌓아 올린다. 둔덕 안에는 흰개미의 집인 둥지가 있는데 높이 솟은 둔덕은 둥지에서 흰개미 수만 마리가 내뿜는 이산화탄소와 열을 밖으로 보낸다. 공기를 정화하고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환기시스템인 셈이다. 덕분에 흰개미 집은 어떤 기후에서나 온도는 섭씨 27도, 습도는 60%를 유지한다. 개미 한 마리의 지능으로는 집을 지을 수 없지만 흰개미 집단은 각각 다른 역할을 지닌 개미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거대하면서도 기능적인 둔덕을 짓는 것이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실내 공기를 정화하고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흰개미 둔덕은 환경친화적 건축에 영감을 주었다. 흰개미 둔덕을 본떠 1996년 짐바브웨에 건설된 이스트게이트센터는 무더운 아프리카에서 냉난방 장치 없이도 쾌적함을 유지한다.

이쯤 되면 자연 위에 군림하려는 인간의 발상이 얼마나 오만한지 깨닫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이마누엘 칸트 등 서양의 철학자 대부분은 동식물을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보고 인간중심적 세계관을 퍼뜨렸다. 최근 들어 이런 서양철학의 전통이 결국 환경위기를 초래했다는 반성이 나오고 있다. 저자의 말대로 위대한 자연은 인류가 풀지 못한 문제의 답을 이미 알고 있다.

이 책은 바이오미메틱스 관련 저술의 긴 맥을 잇고 있기도 하다. 생물영감의 창시자로 꼽히는 영국의 동물학자이자 수학자 다시 톰프슨은 1917년 ‘성장과 형태’에서 생물체로부터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다양한 구조물을 소개했다. 이 책이 출간된 이후 동물의 골격은 건축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됐다. 벨기에의 환경운동가이자 저술가 군터 파울리는 2008년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회의에서 발표된 ‘자연의 100대 혁신기술’ 보고서를 바탕으로 2010년 ‘청색경제’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생물로부터 영감을 받거나 생물을 모방한 100가지 혁신기술을 이용해 10년 안에 1억 개의 일자리가 생긴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번역 소개된 책 ‘바이오미메틱스’(로버트 앨런 외 지음·시그마북스)도 같은 주제를 다뤘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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