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자외선이 만든 피부색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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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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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니나 자블론스키 지음·진선미 옮김/328쪽·1만7800원·양문

의과대학의 해부학 실습장. 처음으로 시체를 해부해야 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꺼림칙함과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러나 차근차근 피부를 제거해감에 따라 망설임은 사라진다. 피부 밑으로 근육, 신경, 힘줄들이 분명히 드러나면서, 특정한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더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피부가 완전히 사라진 뒤 학생들은 비로소 복잡하고 신비한 인체 내부를 열정적으로 탐색하게 된다.

피부는 과연 우리 몸을 보호하는 얇은 막에 불과한 것일까.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인류학과 교수인 저자는 3억 년에 걸친 인류 피부 진화의 역사를 연구해 왔다. 이 책에서 그는 피부가 가진 생물학적, 사회문화적 의미를 폭넓게 고찰한다.

한 사람이 가진 피부의 평균 넓이는 약 2m²(약 0.6평), 무게는 4kg이다. 우리 신체에서 가장 크고 뚜렷하게 보이는 기관이기도 하다. 몸을 보호하고, 감각을 느끼고, 정보를 수집하고, 나를 알리는 광고판이며, 타인과 관계를 맺는 역할을 하는 핵심 기관이 피부다.

인간의 피부가 여타 포유류와 다른 점으로 저자는 세 가지를 꼽는다. ①털이 없고 ②지역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의 색깔을 갖고 있으며 ③피부에 인위적으로 색칠하고, 구멍을 뚫고, 흉터를 남겨 장식에 이용한다는 것이다.

사람 피부에 털이 없는 이유는 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뇌 용량이 커서 몸 안팎에서 발생하는 많은 열을 효과적으로 식혀야 하는 인간은 다른 포유류보다 훨씬 많은 땀을 흘리고 빨리 증발시키기 위해 털을 없애게 됐다는 설명이다. 온몸이 털로 뒤덮인 개는 땀을 흘리기보다는 혀를 내밀고 헐떡거리며 더위를 식힌다. 또 인간은 다른 포유류처럼 털을 곤두세울 수 없기 때문에 얼굴 피부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진화시켰다.

피부를 벗겨 버리고 근육조직을 노출시킨 인체 표본의 모형인 ‘에코르셰’. 피부를 벗겨내면 개성과 관련된 특성도 거의 사라진다. 양문 제공
피부를 벗겨 버리고 근육조직을 노출시킨 인체 표본의 모형인 ‘에코르셰’. 피부를 벗겨내면 개성과 관련된 특성도 거의 사라진다. 양문 제공
저자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설명하는 부분은 ‘피부색’이다. 피부색은 인류가 주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시켜온 정교한 생존전략일 뿐, 인종주의의 근거가 될 수 없다. 피부색은 자외선의 강도와 가장 큰 관련이 있다. 자외선은 인체 생존에 꼭 필요한 엽산과 비타민D 생성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햇빛을 차단하는 피부 속 멜라닌 색소의 농도를 조절하는 과정에서 피부색이 변화해온 것이다.

그런데 백인들이 검은색 피부를 가진 사람들을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은 감정도 없고, 수치심도 없는 열등한 존재(피부색이 옅은 사람들은 부끄러울 때 얼굴이 붉어지는 게 눈에 잘 뜨인다)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피부색이 인종이라는 파괴적 개념과 연계됨으로써 인류의 분열에 기여한 것은 가장 큰 비극”이라고 말한다.

피부는 인체에서 가장 큰 성(性) 기관이기도 하다. 섹스에서 얻는 기쁨의 대부분 또는 상당 부분은 피부 접촉에서 얻어진다. 이렇듯 피부는 중요한데도 사람들은 그 존재 의미를 평소에 느끼지 못한다. ‘낯짝 두껍다’ ‘얼굴빛도 변하지 않고 거짓말한다’ ‘닭살 커플’이라는 표현을 즐겨 쓰면서도 말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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