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서울 서초구 반포동 가톨릭중앙의료원에서 열린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발족식에서 염수정 주교(오른쪽)가 정진석 대주교로부터 생명위원회 위원장 임명장을 받고 있다. 동아일보DB
서울대교구장이 유력한 염수정 주교는 그동안 총대리 주교로 이미 정진석 추기경의 역할을 상당 부분 대행해 왔다. 평양교구장을 겸하는 서울대교구장은 가톨릭 신자 수나 한국 교회사에서의 비중을 감안할 때 사실상 한국 가톨릭계를 대표한다.
가톨릭계에서는 염 주교와 아프리카 주우간다 교황대사인 장인남 대주교(63), 제주교구장인 강우일 주교(67), 대전교구장인 유흥식 주교(61)를 후임 서울대교구장 후보로 꼽아 왔다.
교구장 퇴임과 후임 추기경 임명 등 고위 성직자 인사는 교황청의 공식적인 발표가 있기 전에는 함구하는 것이 가톨릭계의 오랜 관행이다. 그러나 가톨릭계에서는 일단 교구 내부에서 교구장이 나왔다는 점에서 교황청이 변화보다는 안정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대교구의 한 고위 관계자는 “다른 교구 출신이 아니라 내부에서 교구장이 나왔다는 점에서 사제들이 환영하는 분위기”라면서 “정 추기경으로 상징되는 다소 보수적인 교회 정책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때 유력한 서울대교구장 후보로 물망에 올랐던 강 주교는 최근 4대강 개발과 제주 해군기지 등 정치적인 현안마다 정부와 마찰을 빚고 있어 교황청이 우려했다는 시각이 많다. 교황청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교황청은 교구장이 한국 교회를 대표하면서 정부와 불필요한 마찰을 빚는 것을 원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장인남 대주교는 교황청의 신임이 두터운 데다 외교관 출신답게 부드러운 리더십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낙점을 받지 못했다. 특히 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007년 주우간다 교황대사로 임명해 후임 교구장으로 한때 강력하게 거론됐지만 교황청은 교구의 분위기를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염 주교는 옹기장학회, 바보의 나눔 등 김수환 추기경의 유지를 잇는 역할을 하면서 2005년 발족한 생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생명문화운동에 큰 관심을 기울여 왔다. 생명위원회는 ‘생명의 신비 기금’ 100억 원을 마련해 배아줄기세포 대신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성체줄기세포 연구 및 치료를 지원하는 한편 ‘생명의 신비상’을 제정해 성체줄기세포 연구에 큰 업적을 낸 학자들에게 매년 3억 원을 시상하기로 했다.
후임 교구장 인사가 일단락됨에 따라 추기경 서임 문제도 관심거리다. 정 추기경은 지난해 말 만 80세가 되면서 추기경들이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참석하는 비밀회의(콘클라베)에 참석할 수 없었다.
교황청은 서울대교구장이 한국 가톨릭계를 대표한다는 것을 감안해 적절한 시점에 염 주교를 추기경으로 서임할 가능성이 높다.
주교회의 관계자는 “추기경 서임은 교황 선출 및 피선출권 등과 관련해 국가별 교회의 대표성을 감안하는 정치적인 고려를 해야 한다”며 “한국 교회의 경우 콘클라베에 참석할 수 있는 추기경이 한 분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후임 서울대교구장의 추기경 임명 시기가 빨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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