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시인 김기택 씨, 실버스타인 유고 동시집 ‘세상 모든 것을 담은 핫도그’ 번역해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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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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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말로 세상 꼬집은
풍자의 통쾌한 맛에 반해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작가 셸 실버스타인의 유고 시집 ‘세상 모든 것을 담은 핫도그’를 번역한 김기택 시인. 그는 “실버스타인처럼 굉장히 웃기는 시를 쓰고 싶은데 쉽지 않다”며 웃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작가 셸 실버스타인의 유고 시집 ‘세상 모든 것을 담은 핫도그’를 번역한 김기택 시인. 그는 “실버스타인처럼 굉장히 웃기는 시를 쓰고 싶은데 쉽지 않다”며 웃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작가 셸 실버스타인(1930∼1999)의 유고 시집 ‘세상 모든 것을 담은 핫도그’(살림)가 나왔다. 145편의 동시와 삽화가 곁들어진 명랑하고 유쾌한 시집이다.

번역자가 김기택 시인(55)이란 것을 봤을 때는 고개가 갸웃해졌다. 그가 김수영문학상, 미당문학상, 현대문학상 등 수많은 수상경력을 지닌, 시 쓰기에도 바쁜 시인이라는 점은 접어두더라도, 씹던 껌에 남은 이빨자국에서 지구의 일생 동안 남아있던 살육과 살의, 적의의 기억을 끄집어내고, 그렁그렁한 소의 눈망울을 ‘수천 만 년 말(언어)을 가두고 있는 동그란 감옥’으로 명명했던 날선 분석주의자가 동시집을 번역한다는 게 의외였다. 잔혹하고 처절한 시어들 이면에 동심을 숨기고 있던 그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흔히 얘기하는 동시하고는 달라요, 그렇다고 잠언집도 아니죠. 어린이의 말투를 빌려서 어른들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랄까. 생각이나 대상을 뒤틀거나 풍자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유고 동시집 표지
유고 동시집 표지
실버스타인 시집의 특성에 대해 김 시인은 “우리나라에서 못 보던 장르”라고 했다. 기자가 ‘어른들을 위한 동화 아니냐’고 하자 시인은 “딱히 그것도 아닌데…”라고 고개를 갸웃했다. 장르 불명의 작품들은 이런 식으로 펼쳐진다.

‘긴 밍크코트를 입은/사슴 가죽 바지를 입은/방울뱀 가죽 장식이 달린/악어 가죽 부츠를 신은/너구리 꼬리 장식이 달린/비버 가죽 모자를 쓴/저 여자가 뭐라고 외쳤는지 아니//고래를 구합시다.’(시 ‘야생 동물을 사랑한 여자’ 전문)

‘행복한 결말이란 건 없어./끝나는 건 언제나 가장 슬픈 일이거든./그래서 나는 행복한 중간이나/아주 행복한 시작이 좋아.’(시 ‘해피엔딩?’ 전문)

실버스타인은 이렇게 풍자와 세태고발뿐만 아니라 여러 단상들을 경쾌한 언어로 풀어낸다. 실버스타인과 자신의 차이점을 물었더니 시인은 빙그레 웃었다. “저도 굉장히 웃기는 시를 쓰고 싶은데 쉽지 않네요. 허허. 다만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세세하게 관찰해 비틀어서 보여주는 점에서는 둘이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 시인은 “가끔 동시를 쓰고 싶을 때가 있고, (동시가) 나오는데 발표는 안 하고 있다”며 웃었다. 5, 6년 동안 동시를 모아놨는데 2, 3년 뒤에 책으로 낼지도 모르겠다고 쑥스러워했다. “동시를 쓰려면 어린이들의 말과 통하는 부분이 많아야 하는데 나이가 드니 그게 보이는 것 같네요. 허허.”

자연스레 그의 새 시집 얘기로 흘렀다. 2009년 발표한 시집 ‘껌’이 큰 호평을 얻은 터라 그의 차기작에 대한 문단의 관심도 높다. 그는 “시가 50편 정도 모였다”고 했다. 시집을 낼만한 분량이다. 하지만 그는 1년 정도는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대개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들인데 30∼40%는 버려야 하죠.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이 많은데 거절할 수 없어 문예지에 발표했어요. 그것을 다시 또 시집으로 묶을 수는 없지요.”

문단에서는 ‘한 시집에 좋은 시 다섯 편만 있으면 좋은 시집이다’란 말이 있다. 하지만 그는 “버릴 시가 없어야 좋은 시집이다. 좋은 작품 몇 개 끼워놓고 시집 낼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문단이 왜 그에게 주목하는지 알 것 같았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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