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정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룸비니 지역 ‘한 - 네팔 평화공원’ 조성 맡겨…
진신사리 탄생불 제막
15일 오전 8시 안개에 싸인 네팔 남부 룸비니 동산에서 108산사 순례기도회원들이 탄생불 제막식에 앞서 진신사리 이운식을 가졌다. 150명의 순례회원들은 코끼리 등에 안치된 부처님의 진신사리 뒤를 따라 마야데비 사원까지 6km 구간을 걸었다. 룸비니=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네팔 수도인 카트만두에서 출발한 버스는 10시간이 넘도록 왕복 2차로의 험준한 계곡 길을 곡예운전했다. 천길 낭떠러지 밑에 흐르는 빙하천 주변에 사고로 굴러 떨어진 트럭의 잔해들이 오싹한 기운을 전했다. 버스가 드디어 인도 국경 인근의 룸비니에 도착하자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험준한 산맥은 간 곳이 없었다. 드넓은 평원에는 노란 유채꽃이 한창이고, 원시림은 몬순기후 특유의 습한 안개로 휩싸여 있었다. 아, 부처님이 최초로 제자들을 모아놓고 설법을 하셨다는 녹야원(鹿野苑)이 바로 이런 풍경이었으리라. 》 13일 대한불교 조계종의 ‘108산사 순례기도회’(회주 선묵혜자 스님)가 카트만두 트리부반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네팔 정부의 환영행사는 대단했다. 기알왕 드룩파 린포체(티베트 불교의 영적 지도자)가 영접을 나왔고, 대통령과 총리, 제헌국회 의장이 모두 한국에서 온 스님들을 초청해 면담을 가졌다.
한국 불교계 인사들이 거국적인 환영을 받은 이유는 네팔에서 최상의 보물로 대접받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왔기 때문이다. 이 사리는 부처님의 열반지인 인도 쿠시나가르에 있는 마하파리니르바나 스투파에서 1910년 출토됐던 것으로, 대열반사의 기아네슈와르 주지가 한국의 108산사 순례기도회에 봉양한 8과 중 일부다.
4년 전 선묵혜자 스님이 부처의 진신사리를 들고 처음 네팔을 찾았을 때 현지 언론은 “평화의 부처님이 돌아오셨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당시 네팔은 왕정 철폐를 내건 마오이스트 반군과 정부군이 10년간 내전을 벌이고 있었다. 특히 룸비니는 반군이 남부 테라이 지방의 분리 독립을 주장하며 저항하던 곳으로 순례가 불가능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300명의 108산사 순례기도회원이 룸비니를 찾아온다는 소식에 네팔 정부와 반군 측은 순례길을 터주는 협상을 시작했다. 당시 룸비니에서 열린 사리이운 법회에는 네팔 총리와 여야 정치인이 모두 참석했다. 이를 계기로 평화협상은 계속됐으며 네팔은 내전을 끝내고 제헌의회를 구성했다.
15일 룸비니 사원구역 입구에 조성된 한-네팔 평화공원에서 열린 탄생불 제막식에는 네팔 정부요인이 대거 참석했다. 바부람 바타라이 총리는 “네팔은 내전의 상처를 딛고 결연한 전진을 하려는 시기”라며 “룸비니에서 벌어지는 국제적인 협력은 세상만물에 평화와 자비의 메시지를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룸비니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부다가야, 최초의 설법지 녹야원, 입적지 쿠시나가르와 함께 불교의 4대 영지(靈地)에 속한다. 룸비니가 본격 개발된 것은 1967년 우 탄트 유엔 사무총장이 룸비니를 방문한 이후 유엔 산하 ‘룸비니 개발을 위한 국제위원회’를 설치하면서부터다. 룸비니 사원구역 내에는 한국 일본 중국 베트남 인도 미얀마 캄보디아 독일 프랑스 등이 각국의 사찰을 짓고 있다. 룸비니 개발프로젝트는 네팔정부와 경제협력을 하려는 각국의 치열한 외교전이 벌어지는 현장이기도 하다.
특히 108산사 순례기도회가 탄생불을 세운 장소는 유네스코가 개발하는 룸비니 사원구역의 출입구로 순례객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장소다. 원래는 네팔 왕가의 기념비 건립 예정지였으나 왕정 붕괴 후 중국 일본 태국 등 각국이 경제 지원을 약속하며 자국의 기념물을 세우려고 로비전을 펼쳤다. 그러나 기리자 코이랄라 전임 네팔 총리는 “내전으로 아무도 찾지 않던 때에 한국의 108산사 순례기도회가 진신사리를 모셔와 네팔 평화의 불씨를 마련한 것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며 이곳에 한-네팔 평화의공원을 조성하고 진신사리 탄생불을 모셔줄 것을 요청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미국 뉴욕에서 보내온 축하 메시지에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룸비니 동산의 성역화를 위해 한국의 108산사 순례기도회가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진신사리 탄생불을 봉안한 것은 무척 기쁜 일”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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