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장희의 스케치 여행]도시계획가 이석우씨의 북촌 자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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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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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너머 파란 하늘 한옥의 여유가 좋아

“많은 것을 버리고 와야 합니다.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비우고 와야 한옥에서 제대로 시작할 수 있어요. 아파트에서 살다 5년 전 북촌(정확히는 서울 종로구 계동)에 한옥을 지어 이사 온 도시계획가 이석우 씨. 그는 한옥에 살고픈 사람들에게 하고 싶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온돌과 마루가 한옥 독창성 만들어
한옥(韓屋)이란 말 그대로 ‘한국 고유의 형식으로 지은 집’이다. 한반도에는 오래전부터 초가집을 비롯해 기와집, 너와집, 귀틀집 등 다양한 형태의 주택이 존재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한옥이란 ‘조선시대 꽤 괜찮게 살았던 이들의 기와집’으로 한정된 듯한 느낌이다. 특히 서울시 한옥조례(한옥의 건축, 보수에 대한 지원을 받으려면 꼭 봐야 하는)에 ‘한옥의 형태는 나무 구조에 기와집으로 되어 있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으니, 이젠 기와집이 한옥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듯하다.

한옥의 형태가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당과 송의 영향이 많았던 신라와 고려시대에 한옥의 틀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외양과 달리 한옥의 내부 요소는 중국 가옥과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바로 온돌과 마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옥은 추운 북부 지방에서 발달한 온돌과 따뜻한 남부 지방의 마루가 잘 조합돼 탄생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냉난방 시스템을 동시에 갖춘 집이다.

온돌과 마루는, 한옥이 중국의 집(사람들이 신발을 벗지 않고 침대생활을 함)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발전하도록 했다. 비록 온돌 때문에 복층 목조건물이 발달하지 못한 단점은 있었지만, 한옥은 우수한 친환경적 요소를 갖춘, 진정으로 과학적인 집이다.

마음속에 짓는 궁궐보다 큰 집
이석우 씨와 함께 집 곳곳을 둘러봤다. 우리는 한옥 처마 밑에서 안마당 위의 네모난 하늘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추운 만큼 공기가 깨끗하니 위안을 삼으라 했던가. 그래도 엄동설한의 한파 속에서 짙푸르게 빛나는 하늘이 얄밉기는 했다.

이 씨는 먼저 한옥의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가 지은 한옥은 계동에서는 큰 규모에 속하지만, 이사를 하면서 버려야 했던 짐이 적지 않았다. “건축은 물론 유지, 관리를 하면서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고 쇼핑, 주차, 아이들의 교육환경에 이르기까지 불편한 점이 꽤 많더군요.” 그는 그간의 여러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점들. 그건 ‘정신적 풍요로움’이란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끊임없는 그의 한옥 예찬이 뽀얀 입김으로 변해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파란 하늘빛을 바탕색으로 해 피어나는 입김이 유난히 하얗게 보였다.

“매일 처마 아래에서 이렇게 하늘을 바라봅니다. 하늘은 늘 그 자리에 있었을 텐데, 왜 아파트에 살 때는 하늘을 올려다 본 기억이 없는 걸까요?”

이 씨와 헤어지고 천천히 북촌 골목을 걸었다. 글 잘 쓰기로 유명해 대제학 서거정이 전출도 안 시키고 자기 곁에 붙잡아 두었다던 조선 전기의 문신 홍귀달. 그는 “그냥 허름한 집이지만 눈감고 누워 사색을 하면 999칸을 다 채우고도 남음이 있다”며 집에 대한 욕심을 내지 않고 조그만 오두막에 살며 글을 썼다고 한다.

예로부터 집은 목수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철학이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집은 주인의 생각을 닮아가기 때문이다. 오늘날 가장 많은 주거 형태는 아파트다. 집주인의 철학은 고사하고, 획일화된 아파트의 형태에 우리의 생각과 생활이 억지로 끼워 맞춰지고 있는 건 아닌가 내심 불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좁은 집에 살아도 마음속에 궁궐보다 더 큰 집을 지을 수 있지 않은가. 비록 성냥갑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을지언정 지금부터라도 하늘을 올려다보는 여유를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걸음을 멈추고 올려다 본 서울 하늘은 추운만큼 맑고 상쾌한 공기로 보답하고 있었다. 골목 처마 위의 하늘이 시리도록 아름답게 보였다.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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