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햇살에 작은 얼굴을 묻은 이나영은 “여성스러운 외모와 달리 운동을 무척 좋아해 형사 연기가 힘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70cm의 키에 CD 한 장만 한 얼굴, 겨울 하늘 별같이 또렷한 이목구비…. 7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나영(33)은 ‘생물학적 완성도’가 높은 배우였다.
하지만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외모보다는 ‘4차원’의 엉뚱한 내면을 활용한 작품이 많다. ‘아는 여자’(2004년)의 야구선수를 좇는 귀여운 스토커,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2010년)의 남장여자, ‘비몽’(2008년)의 몽유병 환자가 그가 보여준 대표적 캐릭터들이다.
16일 개봉하는 영화 ‘하울링’의 강력계 여자형사 은영 역도 그는 ‘이나영 식’으로 빚어냈다. “가죽점퍼에 털털한 성격이 여형사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어요. 조용하면서도 열정적인 은영의 내면을 표현하고 싶었죠. 은영은 ‘돌싱’(이혼녀)에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고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처지잖아요.”
신참 형사 은영은 웃음기 없는 얼굴로 냉철하고 치밀하게 사건을 파헤쳐 간다. 승진 때마다 후배에게 밀리는 강력계 만년 형사 상길(송강호)과 파트너가 된 은영은 늑대개가 일으킨 연쇄살인의 미스터리를 하나하나 풀어간다.
오토바이 순찰대 출신인 배역을 그려내기 위해 그는 6개월간 연습해 오토바이 운전면허증도 땄다. “무술감독님이 논두렁에서 ‘나영아, 그냥 타봐’라며 냅다 가르쳐 주셨어요. 비포장 길에서 달리는 장면이 많거든요.”
촬영 중 그의 오토바이가 차를 추돌하는 사고가 있었다. 그는 “세게 날아 ‘푹’ 하고 떨어졌다”고 말했다. “다행히 보호 장비 때문에 안 다쳤어요.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요즘은 길에서 오토바이 타시는 분들이 기어를 정확하게 넣는지 유심히 봅니다.”
정작 힘들었던 건 꼼꼼하기로 소문난 유하 감독의 내면 연기 주문이었다. 강력계의 홍일점인 은영은 선배들의 성희롱을 거부하다가 ‘왕따’가 되고 마초적인 파트너 상길과도 갈등을 빚는다. “감독님이 담담하고 조용한 카리스마를 주문했어요. 그러면서 ‘나영아 폐부에서 나오는 소리로 연기해’라고 하셨죠. 저와 스태프들은 ‘폐부? 폐부가 어디야’ 하고 말하곤 했어요. 하하.” 그는 “캐릭터에 점점 빠져드니 어느 순간 피가 (은영이로) 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도시적이고 현대적인 외모로 각종 CF를 독차지해온 그이지만 영화에서는 예쁘게 나온 작품이 없다. 외모에 대한 자신감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 때문인가. “상처받은 사람들 같은 캐릭터에 좀 더 감정 이입을 잘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원피스 입고 입술 바른 제 모습은 낯설기도 하고요….”
낯가리기로 소문난 그이지만 이번에는 TV 예능프로그램을 찍었단다. “최근 ‘무한도전’ 촬영을 했어요. 많은 분이 제 이미지 때문에 적응 못하고 힘들어하지는 않을까 걱정해요. 하지만 지인들은 ‘좀 자제해라. 너무 승부욕을 불태우지 마라’라고 해요. 마음을 열면 바보처럼 ‘헤벌쩍’해요.”
이제 여배우로서 적지 않은 나이다. 1999년 ‘에이지’로 데뷔한 이래 겨우 11편에 출연하며 깐깐하게 작품을 골라온 그의 배우관을 물었다. “매력이나 궁금증이란 단어가 좋아요. 매 순간 긴장하고 충실하게 살아야 가질 수 있는 요소죠. 언제나 궁금하게 하는 배우, 그게 참 어렵죠?”
인터뷰 내내 유쾌하고 엉뚱한 말을 쏟아낸 그가 이번에는 기자에게 물었다. “근데 기자님은 어떤 배우가 좋은 배우라고 보세요?” 그의 눈에서 장난기가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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