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일으킨 日의 진짜 목적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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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 고려대 교수, 日 인식 분석
‘그들이 본 임진왜란’ 펴내

임진왜란 당시 함경도까지 침략했던 가토 기요마사. 그는 전쟁 후 일본 사회에서 병마까지 내쫓는 존재로 신격화됐다. 학고재 제공
임진왜란 당시 함경도까지 침략했던 가토 기요마사. 그는 전쟁 후 일본 사회에서 병마까지 내쫓는 존재로 신격화됐다. 학고재 제공
2012년 임진년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420년이 되는 해. 일본 우익이 만든 중학교 역사교과서는 임진왜란을 조선에 대한 ‘침략’이 아닌 ‘출병’으로 서술하고 있다. 임진왜란에 대한 일본 우익의 이런 인식은 일본 정치인들의 끊임없는 망언과도 무관치 않다. 일본 사회는 임진왜란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으며 이런 인식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김시덕 고려대 일본연구센터 인문한국(HK) 연구교수가 최근 펴낸 ‘그들이 본 임진왜란’(학고재·사진)은 임진왜란 이후 일본 대중에게 널리 읽혔던 전기와 소설 200여 편을 분석해 당시 임진왜란에 관한 일본 사회의 담론과 인식을 읽어냈다.

일본 사회 저변에 흐르고 있지만 그들이 한국인에게 말하지 않는 임진왜란의 인식에 대해 김 교수는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임진왜란은) 원나라와 고려가 일본을 침공한 데 대한 복수전이며, 전쟁의 목적은 조선이 아니라 명나라(정복)였다. 다 이긴 전쟁이었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물러난 전쟁이었다.”

문헌학자인 김 교수가 전기와 소설에 주목한 이유는 이 서적들이 이후 일본인들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세기 일본에선 막부(幕府)나 번(藩)이 소유한 고문서의 영외 유통은 엄격히 금지됐지만 출판사나 대본소를 통한 서적 유통은 활발했다. 임진왜란에 대한 인식을 결정지은 것도 역사서가 아니라 전기나 소설이었다는 것이다.

김 교수가 분석한 책은 에도시대 200여 년간 베스트셀러였던 오제 호안(小瀨甫庵)의 ‘다이코기(太閤記)’, 하야시 라잔(林羅山)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보(豊臣秀吉譜)’, 호리 교안(堀杏庵)의 ‘조선정벌기(朝鮮征伐記)’와 18∼19세기 초에 유행했던 장편 역사소설 ‘에혼 다이코기(繪本太閤記)’ 등이다.

그에 따르면 이 책들을 통해 임진왜란은 조선이 아니라 명을 치기 위한 것이었다는 명분이 확대재생산됐다. 김 교수는 “중화가 일본을 여러 번 침략했다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을 결심하는 장면과 조선처럼 가난한 나라를 쳐서 무엇에 쓰겠느냐는 인식이 전기와 소설 여러 곳에 나온다”고 소개했다.

임진왜란이 일본의 승전이라는 평가도 널리 퍼졌다. 김 교수는 “대중 강연 형태로 전승된 ‘조선정벌군기강’에는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히데요시가 죽어서 일단 군대를 돌리겠으나 만약 국왕과 신하, 백성을 대표하는 사람들을 보내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겠다’고 엄포를 놓는 장면이 나온다”며 “이런 담론이 확대재생산된 결과 일부 역사학자조차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통신사에 대해 ‘조선이 일본에 먼저 화친을 청하기 위해 보낸 사신’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낳았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임진왜란에 대한 일본의 인식은 동양학을 연구하는 서구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그들의 저술이 한국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임진왜란에 대한 일본의 인식과 이에 영향을 받은 국제학계의 인식을 알아야 더 정확한 역사적 대응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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