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해 2011]亞 넘어 유럽-美-중동까지… ‘월드팝’으로 퍼진 2011 케이팝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30일 03시 00분


‘케이팝’은 이제 억지 작명이 아닌, 세계 대중문화계의 보통명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의 남성 아이돌 그룹 비스트가 5일 영국 런던의 오투브릭스턴 아카데미 무대 위에서 4000여 명의 현지 팬들 앞에 서 있다. 큐브엔터테인먼트 제공
‘케이팝’은 이제 억지 작명이 아닌, 세계 대중문화계의 보통명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의 남성 아이돌 그룹 비스트가 5일 영국 런던의 오투브릭스턴 아카데미 무대 위에서 4000여 명의 현지 팬들 앞에 서 있다. 큐브엔터테인먼트 제공
“케이팝 이즈 쿨(K-pop is cool·케이팝 멋져)!”

“케이포프 에스 엘 메호르(K-pop es el mejor·케이팝 최고야)!”

2011년은 한류가 그 무게중심을 드라마에서 대중음악으로 옮긴 해였다. 일본 대중음악을 가리키는 제이팝(J-pop)의 지류처럼 등장했던 ‘케이팝’이란 단어가 그 자체로 자존감을 갖게 됐다.

6월 소녀시대, 샤이니 등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이 가진 SM타운 프랑스 파리 콘서트가 신호탄이었다. 공연에 앞서 파리 루브르박물관 앞에서 현지 케이팝 팬들의 공연 추가 요구 플래시몹이 벌어졌다. SM 측은 부랴부랴 공연을 2회로 늘렸고 이 역시 뜨거운 열기 속에 전석 매진됐다. 이후 미국 캐나다 영국은 물론이고 남미 여러 국가에서도 ‘케이팝 콘서트를 열어달라’는 플래시몹이 잇따랐다. ‘파리 사태’는 시작에 불과했다. 10월에는 3인조 남성 그룹 JYJ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한국 가수로는 처음으로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 유럽 각국에서 몰린 3000명이 넘는 팬이 열광했다. 콘서트는 독일 베를린으로 이어졌다.

13일에는 남미에서도 케이팝 콘서트가 처음 열렸다. 포미닛, 비스트, 지나가 함께 출연한 ‘유나이티드 큐브 인 브라질’이었다. 현지 언론은 케이팝 팬덤에 대해 “일본에서 시작된 아시아 문화 붐이 이제 한국으로 넘어갔다”며 그 열기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텃밭’이었던 아시아에서의 한류는 이제 현지의 주류 문화 중 하나로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가수들이 일본 오리콘 차트 상위권에 대거 진입하는 일은 ‘일상’이 됐고, 한국의 신인 그룹들이 일본 시장을 선공략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슈퍼주니어는 대만 음악차트에서 63주 연속 1위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2000년대 중반 일본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용사마(배용준) 신드롬’을 이제는 ‘근짱 붐’이 잇고 있다. 장근석 주연의 드라마 ‘미남이시네요’가 후지TV로 방영돼 인기를 끌었다. DVD 대여 건수가 450만 회에 달해 ‘겨울연가’를 눌렀다. 10월 발매한 장근석의 일본 데뷔 싱글은 첫 일주일 동안만 11만 장이 넘게 팔려나갔다. 일본 현지 가수를 포함해 남성 솔로 아티스트의 데뷔 싱글이 오리콘 주간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한 것은 30년 4개월 만이었다.

머나먼 아프리카와 중동의 한류팬들은 인터넷으로 케이팝에 ‘접속’했다. 슈퍼주니어의 ‘미스터 심플’, 2NE1의 ‘내가 제일 잘나가’, 현아의 ‘버블팝’ 뮤직비디오가 2000만 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세계 한류 팬들을 컴퓨터 앞에 붙들어 놨다. ‘버블팝’은 미국의 전통 있는 음악전문지 ‘스핀’이 뽑은 ‘2011 베스트 팝 싱글’에서 아델과 비욘세에 이어 3위에 랭크됐다. 2010년 8월 54개국에 동시 생중계를 시작한 KBS ‘뮤직뱅크’는 전 세계 케이팝 팬들의 ‘닥본사(닥치고 본방 사수)’ 리스트에 안착했다.

세계적인 음악가들과의 공동 작업도 단위가 커졌다. 소녀시대는 마이클 잭슨의 명반을 만든 미국 프로듀서 테디 라일리와 손잡고 ‘더 보이스’를 ‘월드와이드릴리즈’했다. 빅뱅의 G드래곤과 TOP은 미국 유명 프로듀서 디플로와 작업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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