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노 김기완-기민 형제… 주역 무대, 형님 먼저 아우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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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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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완(오른쪽) 기민 형제. 둘은 올겨울 한국과 러시아를 대표하는 발레단에서 주역 발레리노로 발돋움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김기완(오른쪽) 기민 형제. 둘은 올겨울 한국과 러시아를 대표하는 발레단에서 주역 발레리노로 발돋움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클래식 작곡가로 활동하던 어머니 서난현 씨(47)는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어린 형제에게 “발레 한번 해 볼래”라고 물었다. 발레 잡지를 보다 문득 아이들에게 발레를 배우게 하면 어떨까 싶었던 것. 형제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날 저녁부터 집 근처의, 남학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발레학원에 같이 다니기 시작했다. 김기완 씨(22)가 초등학교 5학년, 동생 기민 씨(19)가 2학년 때였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올해 연말은 이 형제에게 특별하다. 형 기완 씨는 16∼25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에서 호두왕자로 주역 데뷔 무대를 가졌다. 6월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이 확정된 동생 기민 씨는 내년 1월 6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에서 ‘해적’의 주인공 알리로 주역 데뷔한다. 둘 다 정식 입단 전 주역 데뷔다.

27일 서울 세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기완 씨는 “18일 첫 공연 때 공연 도중 울 뻔했다. 동생이 먼저 거쳐 간 무대라는 생각에 더욱 감정이 고조됐다”고 말했다.

이름은 동생 기민 씨가 먼저 알렸다. 세계 최고 권위 발레 콩쿠르 3곳의 주니어부문(러시아 모스크바 콩쿠르 2위, 미국 잭슨 콩쿠르 2위, 불가리아 바르나 콩쿠르 1위)에 입상했다. 2009년 12월엔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에서 국내 발레리노로는 최연소 주역 데뷔라는 기록도 세웠다. 동생의 주역 데뷔 날 공교롭게도 형은 이원국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객원 주역으로 출연하기 위해 연습하다가 오른쪽 아킬레스 힘줄이 손상되는 부상을 당해 1년 7개월간 재활치료를 해야 했다.

기완 씨는 “무대에 설 날만 꿈꾸며 재활에 매달렸다. 그래도 동생이 곁에 있어 힘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각별한 우애를 과시하는 형제지만 한편으론 치열한 경쟁자이기도 했다. 형이 ‘피루에트’(한 다리로 서서 팽이처럼 회전하는 기술)를 연속 2바퀴 돌면 동생은 3바퀴를 돌려고 기를 썼다. 그렇게 시작한 피루에트 경쟁은 기완 씨가 14바퀴, 기민 씨가 16바퀴까지 도는 것으로 끝났다.

형제는 2008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함께 입학했다. 동생이 고등학교 3년 과정을 건너 뛰어 영재 과정으로 입학한 것. 이후 꼭 붙어 지내던 형제는 동생이 11월 러시아로 떠나면서 헤어진 뒤에도 휴대전화 영상통화로 매일 서로의 일상을 공유한다. 기완 씨는 이번 주역 데뷔 공연을 20여 분 앞두고 긴장감이 극에 달해 기민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생은 ‘오로지 춤에만 몰두하라’는 뜻으로 형제가 어릴 때부터 격려의 말로 쓰던 ‘그냥 춤!’을 주문처럼 들려줬다.

형제는 어릴 적부터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를 흠모해 그가 러시아에서 활동할 당시 둥지였던 마린스키 발레단 입단을 함께 꿈꿨다. 기완 씨는 동생이 먼저 그 꿈을 이룬 것에 대해 “자랑스럽다. 하지만 나도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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