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장희의 스케치 여행]서울 원서동 ‘공간’ 사옥

  • Array
  • 입력 2011년 7월 2일 03시 00분


코멘트

건축 거장 김수근의 열정-체취 그대로

나는 가족 중 누군가가 죽음을 맞은 방은 다시 사용하지 않는다는 어느 고장의 관습에 대해 생각한다. 그곳에선 방 안의 모든 것이 죽는 당시의 상태 그대로 보존되고 아무도 그 방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아마도 한 세대 정도가 지나면, 그 집이 아무리 넓어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사용할 방이 남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관습이 왠지 무척 마음에 든다.

- 장 그르니에 ‘어느 개의 죽음’ 중에서

건축설계사무소 ‘공간’ 사옥을 둘러보다 거장 김수근(1931∼1986)의 작업 공간에 멈춰 섰다. 장 그르니에의 글이 떠올랐다. 단순한 나무 박스를 책꽂이 삼아 세우고 그 위에 큰 판자를 올려 만든 소박한 책상. 책장 가득 꽂힌 낡은 책들. 연필꽂이 속의 펜과 가위, 지우개 털이, 그리고 잉크까지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당장이라도 김수근이 의자를 빼고 앉아 작업을 할 것처럼 시간은 고스란히 그 시절에 멈춰 있었다.

○ 한국 건축 1세대의 스타, 김수근

우리는 모두 시간이란 무한한 흐름 위에 놓인 공간 속에 존재한다. 그 공간을 물리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 바로 건축이다. 공간은 건축가에게 무한한 도전의 현장이다. 김수근은 그 ‘공간’이란 단어를 회사명으로 사용한 사람이다.

그는 한국 건축가 1세대의 최고 스타였지만, 운과는 약간 거리가 먼 사람이기도 했다. 그의 건축 인생은 일본 유학 중 한국 국회의사당 현상설계에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시작되는 듯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1961년 발생한 5·16군사정변으로 백지화되고 만다.

그러나 재능은 낭중지추(囊中之錐), 즉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가만히 두어도 표가 나는 법. 김수근은 자유센터,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경동교회, 서울지방법원 청사 등 수많은 걸작을 만들어 냈다. 물론 세운상가처럼 그의 강한 실험정신을 후대에까지 성공적으로 전해주지 못한 건물도 있지만, 그가 한국 건축에 끼친 커다란 영향에는 흠집을 내지 못했다.

김수근은 56세라는 이른 나이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안타까운 그의 죽음이 알려지자 전 세계에서 조문객이 찾아왔다. 억대의 조의금으로 ‘김수근문화상’이 제정되기도 했다.

김수근은 갔지만, 그가 만든 건축물들은 오롯이 남아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것이 건축의 매력이 아닐까.

○ 거장이 남긴 편안한 기운

책꽂이 한가운데에는 ‘급월루(汲月樓)’란 작은 현판이 걸려 있었다. 급월루란 ‘물을 긷듯이 달을 길어 올리는 다락’이란 뜻이다. 현판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고고미술학자 최순우 선생이 직접 써 준 것이다. 최 선생은 김수근에게 우리나라의 전통을 가르쳐준 스승이기도 했다.

의자에 앉아 봤다. 쿠션 하나 없는 딱딱한 나무의자였지만 폭 안기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그래, 어쩌면 이게 거장이 남긴 기운이란 것이겠지. 책상 옆에 있는 크지 않은 창을 통해 부드러운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 빛은 잘 정돈돼 있는 주인 없는 책상 위에 한동안 머물렀다가 이내 공간 속으로 흩어졌다.

문득 급월루의 밤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졌다. 실제로 달이 보이고, 달빛이 쏟아져 들어올까. 김수근은 그 달빛을 받으며 어떤 구상을 했을까. 나는 늦은 밤까지 김수근의 의자에 앉아 달빛이 창을 통해 들어오길 기다리고 싶어졌다. 큰 스케치북을 펼쳐 놓고 무척 복잡한 그림의 첫 선을, 그 자리에서 시작해 보고 싶었다.

(도움말=이주연 ‘월간 공간’ 이사)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