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핫 이슈]내년 졸업 로스쿨 1기생들의 앞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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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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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펌 4곳서 심화인턴 했는데… 채용약속 감감

2009년 3월 주위의 축하와 기대 속에 로스쿨 1기생들이 입학했다. 하지만 여전히 불투명한 미래와 치열한 경쟁 때문에 그들의 한숨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2009년 3월 2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열린 ‘법학대학원 입학 및 개원식’에서 한 신입생이 이동하는 모습. 동아일보 DB
2009년 3월 주위의 축하와 기대 속에 로스쿨 1기생들이 입학했다. 하지만 여전히 불투명한 미래와 치열한 경쟁 때문에 그들의 한숨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2009년 3월 2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열린 ‘법학대학원 입학 및 개원식’에서 한 신입생이 이동하는 모습. 동아일보 DB
“오전 9시까지 출근하시고 퇴근은 오후 6시에 하시면 됩니다. 출근 시간보다는 퇴근 시간을 준수해주시길 바랍니다.”

최근 열린 한 대형 법률회사(로펌)의 심화인턴 오리엔테이션. 학생들에게 낯선 당부가 이어졌다. 지난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1기생들을 대상으로 인턴을 실시했을 때 의욕이 넘쳐 밤을 새우는 학생들이 있어 곤란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이 로펌의 심화인턴 과정에 참가했던 김모 씨(30·모 로스쿨 3학년)는 밤을 새워 과제를 하고 회사 근처 찜질방에서 샤워만 한 후 바로 다시 출근하기도 했다. 그는 “아무도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다수 인턴 학생이 오전 2∼3시까지 남아 있다 보니 나중에는 서로 눈치를 보며 점점 더 늦게까지 남아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 생존 경쟁에 내몰린 그들

2009년 로스쿨 1기로 입학한 학생들은 내년 1월 변호사 시험을 앞두고 있다. 전체 2000명 중 75%인 1500명이 시험에 합격해 변호사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된다. 하지만 로스쿨 1기생들의 치열한 생존 경쟁은 이미 2학년 때인 지난해 여름방학 무렵부터 시작됐다.

서울 시내의 로스쿨에 다니고 있는 3학년 이모 씨(29)는 지난해 여름과 겨울방학 동안 국내 굴지의 로펌 4군데서 심화인턴 과정을 밟았다. 하지만 결국 어느 곳에서도 ‘컨펌(채용 약속)’을 받지 못했다. 이 씨는 “지금까지 컨펌을 받지 못한 3학년 학생들은 이미 다른 대형 로펌에 불합격했다는 ‘낙인’이 이마에 찍힌 것이나 마찬가지다. 예전 대학입시에 전기와 후기가 있었듯이, 이미 한 번 걸러진 학생들 사이에서 또다시 경쟁이 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3학년 로스쿨 학생 중 15%인 상위 300명 정도는 이미 대형 로펌이나 대기업 법무팀과 채용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내년 1월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면 바로 해당 회사에서 근무를 하게 된다. 따라서 대다수의 나머지 학생들은 여름방학을 맞아 인턴 채용 공고를 내놓고 있는 중소형 로펌들과 대기업 법무팀에 ‘올인’하고 있다.

이 씨도 이번 여름방학에는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변호사 시험을 준비해야 하지만, 불안한 마음에 대기업에서 로스쿨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인턴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지난 방학 때도 인턴을 하느라 정작 변호사 시험 준비를 많이 못 했다. 하지만 변호사 시험 전에 어디든 합격을 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최근 2012년부터 배출되는 로스쿨 졸업생의 취업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사법연수원과 로스쿨 수료자를 대상으로 ‘검찰 로클럭(Law Clerk·검찰연구원)’을 선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법원에서는 재판연구원을 선발하는 로클럭 제도를 내년부터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로클럭의 일부는 법관이나 검사로 임용된다. 재판연구원의 전체 정원은 2022년까지 200명이 될 예정이며, 검찰연구원도 200명 수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최종 임용될 것인지는 미지수다. 바로 2012년 선발을 앞두고 있는 재판연구원의 경우 임용 기준은 커녕 선발 기준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검찰 로클럭 제도는 아직 ‘추진 중’일 뿐이다. 따라서 로스쿨 학생들에게는 아직까지 로펌이 가장 최선의 선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변호사 자격증이 있더라도 법원, 검찰청, 법무법인 등에서 6개월 이상 실무수습을 마쳐야 법률사무소 개업이 가능함에 따라 위기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로스쿨 3학년 고모 씨(28)는 “인턴 채용 공고에는 연봉 등 채용 조건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래도 채용 공고가 날 때마다 로스쿨 학생들이 몰려든다. 미래가 불확실한 학생들에게 확실하게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것이 현재로서는 로펌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심화인턴을 거쳐 컨펌을 받더라도 로스쿨 출신의 처우는 여전히 불안하다. ‘반값 변호사’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일부 로펌은 사법연수원 수료자에 비해 적은 50∼70%의 연봉을 제시하고 있다.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도 로스쿨 졸업 예정자들에게 사법연수원 출신의 70∼80%를 연봉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과제와 시험 중심의 심화인턴 과정

대형 로펌들은 보통 2∼3주 정도의 심화인턴 과정을 거쳐 신입 변호사를 채용한다. 로스쿨 1학년생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인턴 과정이 전반적인 회사 소개와 기본적인 실무 교육에 머물러 있는 반면, 2학년을 대상으로 한 심화인턴 과정은 철저히 과제와 시험 중심으로 이뤄진다.

과제로는 해당 회사에서 수임했던 사례들이 주로 쓰인다. 민사소송의 경우 원고 측에서 실제로 보내온 소장을 나눠주고 그에 대한 답변서를 제출하라는 형식이다. 이 밖에 해당 사건에 대한 검토보고서, 변론요지서 등도 과제로 주어진다.

한 로펌은 3주 동안 공통 과제 3개와 개별 과제 1개를 인턴들에게 준다. 하지만 개별 과제의 경우 학생이 원하면 더 많은 과제를 받을 수 있다. 지난해 겨울방학에 심화인턴에 참가했던 김모 씨(31)는 “다른 학생들이 개별 과제를 따로 받아 더 하는 것을 보면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시험도 철저히 사례 중심이다. 지난해 겨울 심화인턴 제도를 실시한 한 로펌은 매일 시험을 보며 학생들을 평가했다. 해당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박모 씨(26)는 “회사에서 매번 피드백을 해 줬다. 그리고 잘한 사람들 몇 명을 호명하기도 했다. 거기에 이름이 안 오르니 마음이 조급해졌다”고 말했다.

○ 인턴 vs 시보(試補)

과거에는 사법연수원 출신들도 로펌과 검찰에서 지금의 인턴과 비슷한 ‘시보(試補)’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로스쿨이 도입되기 전 로펌에서의 시보 업무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에선 달랐지만 말이다. 사법연수원에서는 로펌에서 정상적인 시보 근무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사법연수원이 학생들의 근무 태도를 통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수단이 없었다.

2년 전 로펌에서 시보를 하고 현재 대형 로펌에서 일하고 있는 한 변호사는 “과거 연수원생들은 뽑아주면 좋지만 ‘아니면 말고’ 식으로 로펌 시보를 신청했었다. 출퇴근도 자유로웠고, 간혹 안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연수원생들의 경우 2학년 상반기에 시보를 해야 하는데, 그럼 4학기 시험을 준비할 시간이 나지 않았다. 따라서 시보 근무를 열심히 할 수 있는 구조 자체가 안 돼 있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심화인턴을 준비하기 위한 로스쿨 2학년생의 경쟁도 점점 심해지는 분위기다. 이들은 해당 로펌에서 심화인턴 과정을 했던 선배들에게서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한다. 로스쿨 2학년 이모 씨(27)는 “알음알음으로 선배들을 찾아 각 로펌에서 주력하고 있는 분야나 과제들을 미리 물어본다. 그런 것들을 알고 가야 그나마 다른 사람들보다 더 눈에 뛸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처럼 취업을 위해 3학년뿐만 아니라 2학년까지 심화인턴 과정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정작 일부 로스쿨 학생은 “인턴을 통해 배우는 것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로스쿨 3학년 신모 씨(30)는 “로스쿨 제도의 도입 취지는 법률 지식과 실무 능력을 함께 갖춘 전문화된 인재 양성에 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이뤄지고 있는 심화인턴 과정은 심층적인 실무 교육이라는 본질에서 벗어나 과제나 시험을 통한 학생들 간의 눈치 경쟁만 부채질하고 있다.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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