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40, 50대 드라마族 남편들… “너무 구박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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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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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벌한 현실 잊게 해주고 가족-동료와 트렌드 소통”

《스마트폰으로 영상물을 들여다보며 엉엉 울고 있다. 출퇴근길에도, 회사에서도, 퇴근 후 침대에 누워서도 마찬가지다. 회사에선 때로 비슷한 연배의 동료들과 같이 보면서 눈물 콧물을 흘린다. 40대 중년 남성 얘기다. SK텔레콤은 최근 영상 콘텐츠 플랫폼 ‘호핀’을 광고하면서 연령대별로 영상물 소비 패턴을 달리해 보여준다. 20대는 남녀가 나란히 영화를 보는 장면이다. 30대는 남성이 코미디물을 웃으면서 보고 있고, 40대는 남자가 멜로물을 보면서 우는 설정이다.》

MBC 시트콤 ‘몽땅 내 사랑’에서 드라마 ‘욕망의 불똥’에 중독된 드라마 마니아로 나오는 김 집사(정호빈). 주인 김 원장(김갑수)에게 늘 구박받으면서도 드라마만은 ‘본방 사수’하는 김 집사는 다양한 이유로 드라마에 빠져드는 한국의 중년 남성들을 대변한다. MBC TV 화면 촬영
MBC 시트콤 ‘몽땅 내 사랑’에서 드라마 ‘욕망의 불똥’에 중독된 드라마 마니아로 나오는 김 집사(정호빈). 주인 김 원장(김갑수)에게 늘 구박받으면서도 드라마만은 ‘본방 사수’하는 김 집사는 다양한 이유로 드라마에 빠져드는 한국의 중년 남성들을 대변한다. MBC TV 화면 촬영
‘호핀’ 광고의 ‘궁상맞은’ 40대 남자를 보며 동변상련을 느낄 중년 남자들이 늘고 있다. 시청률 조사회사인 AGB닐슨미디어리서치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일일 드라마와 미니시리즈 등 시청률 상위 10위에 오른 드라마들의 시청자 구성비를 분석한 결과 중년 남성 비중이 꾸준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시청자 가운데 40대 남성의 비중은 2005년 7.6%에서 2010년 9.0%로, 50대 남성은 5.6%에서 7.2%로 늘었다. 같은 기간 20, 30대 남성의 비중은 줄었으며, 여성의 비중은 60.3%에서 60.1%로 큰 변화가 없었다.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드라마가 중년 남성으로 그 시청층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중년 남성들이 드라마에 빠져드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먼저 가족 및 직장 동료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다. 회사원 엄정현 씨(41)는 “아내가 보니까 옆에서 같이 보기 시작했다. 가족들과 함께 드라마를 보면 공통된 얘깃거리를 찾을 수 있어서 챙겨 보는 편”이라고 말했다. 엄 씨는 펀드매니저들을 다룬 ‘마이더스’나 요리사들 이야기인 ‘파스타’ 등 전문 직업 세계를 다룬 드라마를 보면서 새로운 정보를 얻기도 한다. 드라마를 발원지로 하는 각종 화제를 따라잡고 있으면 직장에서도 “최근 트렌드를 꿰고 있는 쿨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줄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영상 매체에 익숙한 세대들이 중년이 돼서도 자연스럽게 드라마를 보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몇몇 ‘마니아용’ 드라마의 DVD를 소장하고 있는 열혈 드라마 시청자인 권모 씨(40)는 “대학을 다닐 때도 친구들과 드라마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며 “‘시크릿가든’의 경우 아내는 남녀 주인공이 서로 사랑을 확인하고 난 뒤 김샜다며 보지 않았지만 나는 한 편도 빼놓지 않고 다 봤다”고 말했다.

중년 남성들의 드라마 시청을 사회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분석도 나온다.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 파워가 커지고 남자들의 마초 성향이 줄어들면서 콘텐츠 소비 성향도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가정에서는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하고, 밖에서는 치열한 경쟁에 내몰려 스트레스를 받는 중년 남성들이 살벌한 현실에서 도피해 드라마에서 위안을 찾는다는 해석이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막장 드라마의 온갖 극단적인 사례를 보면서 위안을 얻고, 현실과 달리 정의가 승리하는 줄거리를 보면서 상실감이나 박탈감을 해소할 수 있어 허구의 세계인 드라마에 중년 남성들이 빠져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동영 씨(45)는 누적 방문자 수가 30만 명이 넘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 같은 글을 올렸다. “드라마에 나오는 자상한 남자들을 보면서 위기를 느낀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 (집안일을) 하기도 한다.… 아줌마들, 드라마 보는 남편을 구박하지 말라.”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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