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1101>孟子對曰昔者에 大王이…

  • Array
  • 입력 2011년 3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등나라 文公은 齊(제)나라가 등나라에 가까운 薛(설)나라에 성을 쌓기 시작하자 위기감을 느껴 맹자에게 어떻게 대처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맹자는 直答(직답)을 하기보다 周(주)나라 조상 大王이 狄人(적인)의 침략을 받아 빈 땅을 떠나 岐山(기산) 아래로 이주했던 사실을 거론했다. 이것은 등문공에게 나라를 옮기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大王은 부득이 이주했지만, 그의 자손 文王은 은나라 말에 천하의 3분의 2를 차지했고 문왕의 아들 武王은 은나라를 정벌했다. 맹자는 태왕이 현실 상황을 명확히 파악해서 국가사업의 실마리를 열어 후손이 전통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 사실을 환기시키고자 한 것이다.

大王(태왕)은 太王으로도 적는다. 后稷(후직)의 증손 公劉(공류)의 9세손 古公亶父(고공단보)를 말한다. 侵之의 之는 빈 땅을 가리키는 지시사, 之岐山之下의 之는 ‘가다’라는 뜻의 동사이다. 居焉은 ‘거기에 거처했다’는 말로, 焉은 지시사와 종결사가 결합한 형태이다. 시경 大雅(대아) ‘면’편에 보면 ‘고공단보(태왕)가 아침에 말을 달려와 서쪽 물가를 따라 기산 아래에 이르러 이에 후비 姜女(강녀)와 더불어 드디어 와서 집터를 보았다’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태왕이 적인의 침략을 받아 기산 아래로 이주한 사실을 말한 것이다. 앞서 ‘양혜왕·하’ 제5장에서 인용된 바 있다. 非擇而取之는 기산 아래를 좋은 땅이라 여겨 고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현대의 지도자도 외교 사안에서 부득이한 조처를 취할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구차하게 요행을 바라는 조처여서는 안 된다. 반드시 遠謀(원모·원대한 계책)이어야만 할 것이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