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진式웃음코드 스크린에서 무대로 ‘활짝’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22일 03시 00분


연극 ‘로미오지구착륙기’
대본★★★☆ 연출★★★☆ 무대★★★☆ 연기★★★

장진 감독이 창작 희곡으로는 9년 만에 무대에 올린 ‘로미오지구착륙기’. 연극에서 UFO는 마을 주민,
대통령, 목사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이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는 스크린 역할을 한다. 아담스페이스 제공
장진 감독이 창작 희곡으로는 9년 만에 무대에 올린 ‘로미오지구착륙기’. 연극에서 UFO는 마을 주민, 대통령, 목사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이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는 스크린 역할을 한다. 아담스페이스 제공
16∼20일 서울 중구 예장동 남산예술센터에서 8회 상연으로 막을 내린 연극 ‘로미오지구착륙기’(장진 작·연출)는 ‘장진 스타일’을 영화보다 더 뚜렷이 보여준다. 모교인 서울예대의 창작극 동아리 ‘만남의 시도’ 30주년 기념작으로 동아리 선후배들과 함께 만든 대학극 형식이기에 남의 자본을 끌어와 만든 영화처럼 눈치 볼 대상도, 흥행에 대한 부담도 없었을 것이다.

영화 ‘킬러들의 수다’ ‘아는 여자’ ‘박수칠 때 떠나라’ 등에서 보여준 장진 감독의 재기발랄한 상상력은 독특한 제목에서 느껴지듯 한층 더 확장됐다.

미확인비행물체(UFO)가 재개발 예정지인 달동네에 착륙한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처지에 따라 보는 시각은 각양각색. 어릴 때 부모를 사고로 잃은 뒤 ‘죽은 사람은 다른 별로 간다’는 삼촌의 말을 믿고 평생 UFO를 연구한 김주중(이지용)에게 실제 UFO의 착륙은 ‘꿈의 실현’이다. 못생긴 외모로 상처받아 온 그의 초등학생 딸 미미(황희정)는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 외계인과 친구가 되려 한다. UFO는 달동네 주민에겐 내 집 마련의 꿈을 위협하는 불청객이기도 하지만 정치적 업적에 목마른 대통령에겐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다.

장 감독은 장기인 웃음 코드를 촘촘히 배치하며 사회 풍자도 버무려 넣었다. 그의 유머는 관객의 예상을 계속 비껴가는 데서 나온다. 외계인을 방에 숨기고 있다 들킨 미미가 ‘엄마’라고 하며 화들짝 놀라자 “놀랄 때 ‘엄마’라고 하지 말랬지”라고 꾸짖거나, 미미가 외계인을 ‘로미오’라 소개할 때 “그러면 남자냐. 남자 놈이랑 3주 동안 한 방에서 지냈냐”고 화내는 김주중의 반응이 그렇다. 광장에서 외계인의 존재를 눈치 챈 기동타격대장이 미미에게 다가가 “어째 생긴 거부터 수상하다 싶었다”고 말하는 장면도 어김없이 폭소를 자아냈다.

장 감독의 무대 연출은 여러 장면에서 감탄을 자아낸다. 투명 커튼과 조명을 이용해 과거의 회상 장면을 실감나게 보여주거나, 김주중이 외계인과 대화를 시도할 때 흰색 의상을 입은 배우 수십 명을 무대세트처럼 활용한 부분 등이 특히 그렇다.

극 막판 수사관(김대령)의 입을 통해 장 감독은 이 연극을 통해 가장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이렇게 전한다.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간직하는 거, 잊혀져 가는 것들을 기억하며 사는 거, 이걸 바란 거지. 세상은 모든 걸 너무 빨리 지워버리니까. 열정도 순수도….”

반면 이 극의 약점들을 짚기도 어렵지 않다. 등장인물이 50명이나 되고 에피소드도 지나치게 많다. 이야기가 한 지점으로 수렴된다는 느낌이 약한 상황에서, 극 중 내내 김주중을 몰아쳐 온 수사관이 태도를 바꿔 그에게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날리는 것도 뜬금없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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