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본 이 책]서구문명은 좌-우뇌의 권력투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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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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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과 심부름꾼
이언 맥길크리스트 지음·김병화 옮김·748쪽·4만 원·뮤진트리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 KAIST 겸임교수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 KAIST 겸임교수
마음과 물질이 만나는 장소인 뇌를 탐구하는 신경과학의 연구 성과를 인문사회과학에 접목하는 융합학문이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신경철학, 신경윤리학, 신경교육학, 신경신학, 사회신경과학, 신경인류학, 신경경제학, 신경마케팅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부분 신생 학문이어서 일반교양 도서가 흔치 않은 상태인데 신경인류학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역작을 만나게 되어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신경인류학은 신경과학과 인류학이 융합한 분야다. 인류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문화이기 때문에 뇌와 문화의 상호작용을 신경문화(neuroculture)라고 일컫는다.

지은이는 옥스퍼드대에서 신학 철학 영문학을, 존스홉킨스대에서 의학영상을 연구하고 정신과 의사를 지낸 융합적 지식인이다. 신경과학과 인지심리학뿐만 아니라 철학 역사 문학 예술은 물론이고 신화에서 고고학과 인류학으로 종횡무진 경계를 넘나들며 뇌가 서구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탐색한다.

이런 융합 작업의 출발점은 두 개의 반구로 이루어진 뇌 구조이다. 우반구와 좌반구는 구조적으로나 기능적으로 비대칭이다. 구조적 비대칭성은 뇌의 왼쪽이 비대칭적으로 더 크다는 것을 뜻한다. 기능적 비대칭성은 두 반구가 서로 다른 유형의 기능을 수행할 목적으로 전문화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대뇌반구의 기능적 차이에 관해 획기적 발견을 한 인물은 미국 생리학자 로저 스페리(1913∼1994)이다. 그는 좌반구가 언어를 포함해 개념적이고 분석적인 기능에 우세한 반면 우반구는 지각을 포함해 공간적이고 종합적인 처리를 전적으로 맡고 있음을 밝혀냈다. 물론 스페리의 연구로 두 반구의 기능적 차이가 온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그의 업적은 신경과학 초창기에 신기원을 이룬 이정표의 하나로 평가되어 1981년 노벨상이 수여됐다. 저자는 비대칭적인 두 반구가 완전히 다른 세계관을 갖고 있다고 전제하고, 두 반구는 서로 도와야 함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 일종의 권력투쟁 같은 것이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서구 문화의 많은 부분이 이런 메커니즘으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에서 두 반구의 기능적 비대칭성을 흥미진진하게 분석하고 2부에서 이를 토대로 서구 문화의 중요 사건을 독특하게 해석한다.

“뇌의 우반구는 좌반구가 갖는 지식의 기반이 되고, 양쪽이 다 알고 있는 것을 활용가능한 전체로 종합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런 생각에서 우반구를 주인,좌반구를 심부름꾼에 비유한다. 하지만 반구 사이의 치열한 권력투쟁의 결과심부름꾼인 좌반구가 주인인 우반구보다 지배력이 커졌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뇌의 우반구는 좌반구가 갖는 지식의 기반이 되고, 양쪽이 다 알고 있는 것을 활용가능한 전체로 종합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런 생각에서 우반구를 주인,좌반구를 심부름꾼에 비유한다. 하지만 반구 사이의 치열한 권력투쟁의 결과심부름꾼인 좌반구가 주인인 우반구보다 지배력이 커졌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부는 좌뇌와 우뇌에 대한 일반 통념이 얼마나 근거 없는 것인지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아마도 이 책만큼 두 반구의 비대칭성을 치밀하고 논리적으로 파헤친 저술은 찾아보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가령 좌반구는 ‘세계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도록 설계되어 있지만 초점이 좁고, 경험보다 이론을 높이 평가하며, 생명체보다 기계를 선호하고, 명시적이지 않은 것은 모조리 무시하며, 공감하지 못하고, 부당할 정도로 자기 확신이 강하다’는 것이며 우반구는 ‘세계를 훨씬 더 넓고 관대하게 이해하지만, 좌반구의 맹공격을 뒤집을 만한 확신이 없다’는 것이다. 우반구는 ‘좌반구가 갖는 지식의 기반’이 되고 ‘양쪽 다 알고 있는 것을 활용 가능한 전체로 종합할 수 있는 쪽’이기 때문에 우반구를 주인, 좌반구를 심부름꾼에 비유한다.

저자는 반구 사이의 치열한 권력투쟁의 결과 심부름꾼인 좌반구가 주인인 우반구보다 지배력이 커졌다고 주장하고, 좌반구가 우위를 누리게 되면서 서구 문화의 주요한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2부에서 보여준다. 가령 고대 그리스의 화폐 사용은 ‘우반구의 가치로부터 좌반구의 가치로 넘어가는 과정을 명료하게 반영’하며, 르네상스는 ‘우반구가 벌인 반란’이다. 산업혁명은 ‘좌반구가 우반구 세계에 가장 뻔뻔한 공격을 가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결국 심부름꾼인 좌반구가 주인을 배신하고 지배권을 장악하여 우반구 세계를 전적으로 제압함에 따라 예술은 ‘은유적 힘을 불러내는 육화된 능력을 잃고 개념이 되고’, 음악은 ‘리듬으로 축소될 것’이며, ‘신체는 기계로 여겨지고, 자연 세계는 수탈해야 할 자원더미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좌반구가 주도하는, 기계장치에 사로잡힌 엄격하고 관료적이며 비인간적인 사회가 형성되었고 그 대가로 인류와 우리 세계의 행복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저자는 서구 문화사에서 지난 500년 동안 벌어진 상황을 대뇌 반구의 권력투쟁과 배신으로 설명하고 “그동안 지혜롭게 백성들을 다스려 평화와 안정을 주었던 주인은 사슬에 묶여 끌려간다. 주인은 심부름꾼에게 배신당한 것이다”라고 재삼 강조한다.

그렇다면 심부름꾼의 손에 잡혀 있는 서구 문명의 활로는 없는 것일까. 저자는 동양 문화에서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말한다. 서구 문화에서 두 반구의 존재 방식 사이에 그어진 날카로운 이분법은 동양 문화에는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서구와 같은 방식은 아닌 듯하기 때문이다. “동양인들이 경험하는 세계는 여전히 사실상 우반구의 세계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서구에서 찾아보기 힘든, 자연을 존경하는 태도는 일본의 과학적 교육 체계의 특징이라고 치켜세우지만 중국이나 한국의 문화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어쨌거나 “동양의 문화는 두 반구의 전략을 더 균등하게 사용하는 데 비해 서구의 전략은 좌반구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동양에서는 심부름꾼이 주인과 협력하여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서구는 심부름꾼이 주인을 찬탈하는 과정에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과연 우리나라 문화도 그런 식으로 설명이 가능할지 궁금증이 남는다.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 KAIST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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