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백치와 백지’는 안보이고 팜파탈의 유혹만 돋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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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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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백치 백지’
연출 ★★★☆ 연기 ★★★★ 무대 ★★★☆

연극 ‘백치 백지’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백치’에 한국적 내용인 ‘백지 이야기’를 새롭게 추가했지만 그 둘의 결합은 매끄럽지 못했다. 사진 제공 극단 서울공장
연극 ‘백치 백지’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백치’에 한국적 내용인 ‘백지 이야기’를 새롭게 추가했지만 그 둘의 결합은 매끄럽지 못했다. 사진 제공 극단 서울공장
창녀 나스타샤가 두 남자로부터 청혼을 받는다. 결혼을 대가로 10만 루블이라는 거액을 내놓은 ‘깡패 사업가’ 로고진과 가진 것 없지만 순수한 청년 뮈시킨 공작. 나스타샤는 뮈시킨 공작의 순애보를 받아들일 듯하다가 결국 돈을 택한다. 하지만 나스타샤는 받은 돈을 불에 태우고 그 재를 얼굴에 바르며 절규한다. “난 너(뮈시킨 공작)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야!”

11일 무대에 오른 연극 ‘백치 백지’(공동연출 임형택·안드레이 세리바노프)는 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백치’가 원작이다. 간질을 앓고 형편마저 궁해 이리저리 남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는 뮈시킨 공작이 나스타샤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연적이던 로고진이 결국 나스타샤를 살해한다는 게 주요 뼈대. 뮈시킨 공작은 한없이 순수한 인물로 나스타샤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상처를 보듬어준다.

한-러 공동 연출답게 원작에 없는 ‘백지 이야기’가 추가됐다. 동네에 하나쯤 있을 법한 바보 ‘백지’는 한없이 순수하지만 동네 아저씨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쓸쓸히 죽는다. 이런 ‘백치’(뮈시킨 공작)와 ‘백지’를 병치해 각박해지는 사회 속에서 사라져가는 순수한 영혼의 의미를 되짚는다는 게 연출 의도지만 가슴에 깊이 와 닿지 않았다. ‘백치’는 ‘성자’라기보다 우유부단한 성격이 두드러지고, ‘백지’는 별다른 대사도 없고 출연 분량도 짧아 억지로 끼워 넣은 것처럼 느껴졌다.

난해한 원작에 새로운 이야기까지 끌어넣어 혼란스러운 극 가운데 가장 선명한 인물은 ‘나스타샤’(이은주)다. 여러 남자를 갖고 노는 요염한 매력, 뮈시킨의 사랑을 알면서도 떠나는 설정의 현실감, 로고진에게 살해되는 비극까지. 팜파탈의 매력이 이 씨의 호연으로 밀도 있게 펼쳐졌다. 생동감 있는 군무나 무대 바닥에 프로젝터를 쏴 표현한 다양한 무늬도 눈길을 끌었다. 그럼에도 각각의 장면이 준 깊은 인상과 별개로, 전체 공연이 끝난 뒤 일관된 메시지가 느껴지기에는 ‘정리’가 더 필요해 보였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도 연극 무대에 오르고 있다. 소설의 극적 장면을 압축한 ‘죄와 벌’은 28일까지 서울 중구 장충동2가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 이 소설을 주요 모티프로 한 창작극 ‘루시드 드림’은 서울 종로구 명륜1가 선돌극장에서 21일까지 공연된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i: 3만5000원.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혜화동 원더스페이스 동그라미극장. 02-59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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