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광주비엔날레]마시밀리아노 조니 예술총감독 인터뷰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4일 03시 00분


‘만인보’ 주제 2010 광주비엔날레는 인간본연의 뿌리찾기
사람과 이미지의 바다에 빠지다

2010 광주비엔날레 마시밀리아노 조니 예술총감독(37·사진)이 이번 전시 주제로 ‘만인보(10000 LIVES)’를 내세운 것은 결국 인간 그 본연의 모습에 대한 뿌리 찾기를 계속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조니 총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 ‘사람과 이미지들 간의 관계, 또는 이미지와 사람들의 관계에 대한 폭넓은 탐구 작업’이다. 따라서 깊어가는 가을 광주비엔날레를 찾아 떠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바다, 이미지의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셈이다.

조니 총감독은 9월 3일 개막에 앞서 열린 미디어 설명회에서 “우리는 매일 수백만 개의 이미지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이미지 과잉 시대에 살고 있다”며 “2010 광주비엔날레는 다양한 시각예술 작품들을 통해 이미지와 사람의 관계를 고찰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이미지에서 위안을 찾으며, 이미지의 이름으로 전쟁을 수행하고, 이미지를 중심으로 모이고, 이미지를 숭배하고 갈망하며, 이미지를 소비하고 또 파괴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잘 알려졌다시피 주제어 ‘만인보’는 고은 시인의 동명 연작시에서 따 왔다. 만인보는 고은 시인이 5·18민주화운동에 연루돼 감옥살이를 하면서 구상한 작품으로 올 4월 마지막 30권을 완간한 그 나름의 ‘인간학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 만인보는 시인이 평생에 걸쳐 직접 만났거나 역사와 문학을 통해 만난 인물 3800여 명의 삶을 요약한 일종의 초상화집 같은 이미지로 이번 비엔날레와 자연스럽게 맞닥뜨리고 있다. 조니 총감독은 “고대 신화에 따르면 이미지는 연인의 그림자를 표현하거나, 우리가 떠나보낸 이들의 삶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며 “이번 전시는 초상화 갤러리 혹은 가족 앨범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조니 총감독과의 일문일답.

―이번 비엔날레 역시 주제어만 듣는다면 보통 사람들에게는 난해한 것 아닌가.

“야심적으로 들릴 수 도 있지만 이미지는 그 자체로 인간에게 중요한 문제다. 인간만이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듯 미술의 역사를 돌아보면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것, 즉 타인의 신체와 얼굴을 응시하는 시선의 역사임을 알 수 있다. 스스로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은 사람들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인데 이는 이미지를 통해서만 시간의 소멸에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제어 ‘만인보’가 갖는 중요한 의미는 무엇인가.

“지나치게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을지라도, 이미지의 생산과 소비는 오늘날 아마도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산업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인터넷상에 하루에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미지가 업로드되는 가운데 예술가들은 이미지의 생산 공유 교환 방식에 있어 그 어떤 확실성도 가질 수 없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만인보’ 전시를 통해 이미지의 집착, 우리 스스로의 이미지 뿐 만아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이미지들을 생산하는 갈망과 광적 탐닉을 탐구하고자 했다. 가능한한 많은 작품과 이미지를 통해 일상 속에서 우리가 보고 소비하는 이미지들과 경쟁할 수 있는 그런 전시회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고은 시인의 연작시 ‘만인보’에서 주제어를 빌려 왔다는데….

“‘10000 LIVES’는 즉각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미지의 폭발을 강조하면서 이미지 과잉이라는 개념을 대변한다. 무엇보다 언어로 완성한 초상화 컬렉션이라 할 수 있는 걸작 ‘만인보’가 시인 자신이 전 생애를 통해 직접 만났던 인물에 대한 기록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많은 작품에서 이 같은 삶의 모습과 이미지를 탐색하게 될 것이다.”

―올해는 광주에서 일어났던 5·18민주화운동 30주년인데 이번 전시에도 그런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는지.

“전시 주제로 고은 시인의 시를 빌려 온 배경의 하나가 1980년 광주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당시 그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이유로 체포됐다. 그는 ‘시란 역사의 노래’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우리 곁을 떠난 사람들의 이미지에 맞춰야겠다는 생각은 민주화 희생자들의 초상화를 보면서 끌어낸 것이다. 그렇다고 이번 전시가 이들 사건의 전시로 축소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 대신 이번 비엔날레를 일종의 트렌드 탐색 또는 유명인사 목록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바꾸고자 시도했다. 다시 말해 ‘만인보’는 주제가 있는 전시회 혹은 더 그럴듯한 표현으로 인류 시각문화의 임시 박물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기념일을 축하하는 여러 방법 가운데 위대한 예술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놓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아무튼 광주비엔날레는 전 세계 여러 비엔날레 중 가장 많은 관객이 찾는 이벤트로 꼽힌다. 그래서 다양한 읽기가 가능한 전시, 다양한 관객에게 열려있는 전시도 고려해 보고 싶었다.”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구체적인 작품들이 있는가.

“크로아티아 출신 개념예술 선구자인 산야 이베코비치는 당시 사건들에 대한 기념작품을 제작했고, 관련 유가족과 협력하여 모든 희생자의 사진을 수집해 사진 속에서 주인공들이 눈을 감도록 해 줬다. 또 5·18의 연장선상에서 살펴보도록 특별히 1987년 민주화운동 시위 중 사망한 이한열 씨를 그린 최병수 작가의 초상을 소개했다. 한국민들이 잘 아는 것처럼 이 초상은 군부독재가 몰락하기 전 마지막 대규모 항쟁을 이끌었다. 그 어떤 수많은 이미지도 이처럼 한 나라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적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김권 기자 goqud@donga.com
::마시밀리아노 조니 총감독은…::


이탈리아 출신의 전시기획자인 마시밀리아노 조니는 이탈리아 볼로냐대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미술잡지 ‘플래시아트 인터내셔널’ 미국편집장(2000∼2002)을 맡으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그는 2001년 미국 뉴욕에 ‘잘못된 화랑(Wrong Gallery)’을 공동 설립해 비판적 담론의 창구로 활용했다. 그는 또 자신이 창간한 잡지 ‘찰리(Charley)’와 ‘롱 타임스(Wrong Times)’를 통해 독립 프로젝트를 시도해 왔다. 2003년 제50회 베니스비엔날레 ‘The Zone’ 섹션의 큐레이터로 참여했다. 2004년 유럽 현대미술비엔날레인 ‘마니페스타 5’(스페인)에서 마르타 쿠즈마와 함께 공동 전시감독을 맡았다. 2006년 제4회 베를린비엔날레에서 마우리치오 카텔란, 알리 수보트닉과 함께 전시기획자로 활동하는 등 유럽 비엔날레에서 경험을 쌓아왔다. 또 그리스 ‘데스테재단’이 주최한 ‘Monument to Now’(2004)와 ‘Fractured Figure’(2007)에서 전시기획에 참여했다. 2007년에는 리옹비엔날레 자문위원으로 일했다. 2003년부터 이탈리아 니콜라 투르사르디재단 예술총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2006년부터는 뉴욕 뉴 뮤지엄 특별전 디렉터를 맡아 ‘Paul Chan: the 7th Lights’(2008), ‘After Nature’(2008) 등 전시를 선보였다. 최근에는 ‘The Generational: Younger Than Jesus’(2009)를 공동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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