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북 카페]무명작가 아이미 소설 ‘산사…’ 영화로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9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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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익은 산사 열매처럼 풋풋한 사랑…경쟁시대 핏발선 붉은 눈을 적시다

《“1992년 또는 1993년 출생으로 1970년대를 대표할 만한 청순 그 자체인 소녀를 찾아라.” 2008년 베이징(北京) 올림픽 개막식 프로그램 총감독을 맡았고 오늘날 중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중 한 명인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은 지난해 초 스태프를 불러 모은 후 이 같은 특명을 내린다. 결국 올해 3월 허베이(河北) 성 스자좡(石家莊)에서 1992년생 고등학교 3학년인 저우둥위(周冬雨)를 찾아낸다. 그는 난징(南京)예술학원 무용과에 지원했다가 장 감독팀 눈에 띄었다. 저우는 16일 중국 전역에서 동시 개봉한 영화 ‘산사나무의 사랑’의 여주인공인 징추(靜秋) 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요즘 중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한 무명작가의 순정소설이 원작이다. 재미 작가 아이미(艾米) 씨가 2005년 ‘문학성(文學城)’이라는 인터넷에 올린 글이 인기를 끌자 2006년 책으로 출판돼 지금까지 250만 부가량이 팔렸다. 드라마로도 제작 중이다. 홍콩 시사주간 야저우(亞周)주간은 2007년 ‘중국어 소설 부문 1위’로 선정했다.

소설은 10대 후반과 20대 초반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로 구성은 비교적 단순하다. 무대는 1975년 문화대혁명이 끝나갈 무렵 후베이(湖北) 성 이창(宜昌). K시 고등학생인 징추는 새 교재 편집에 쓸 내용을 조사하기 위해 가난한 농촌에 갔다가 촌장의 셋째 아들로 자원탐사 회사에 다니는 라오싼(老三)을 만나 사귄다. 부모 몰래 만나면서 산사나무 아래에서 첫 키스를 하는 등 두 사람의 사랑은 산사나무의 열매처럼 빨갛게 익어간다. 격정적인 사랑을 느끼며 하룻밤을 보내지만 끝내 육체적인 관계까지는 가지 않는 청춘 남녀의 촌스럽기까지 한 풋풋함이 덜 익은 산사 열매처럼 시고 애잔하다.

라오싼은 징추가 대학을 졸업해 교직을 얻을 때까지 기다리다 어느 날 모습을 감춘다. 오랜 수소문 끝에 찾아낸 라오싼은 백혈병을 앓아 사실은 징추와 같은 도시의 한 병원에 있으면서도 연락하지 않고 있었다.

영화 ‘산사나무의 사랑’ 여주인공 저우둥위. 사진 출처 인터넷 포털 신랑
영화 ‘산사나무의 사랑’ 여주인공 저우둥위. 사진 출처 인터넷 포털 신랑
마지막으로 징추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싶어 불렀지만 징추가 병원에 왔을 때는 이미 아무런 말도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된 후였다. “두 발 중 한 발이 이미 무덤에 들어갔더라도 나의 이름을 들으면 다시 되돌아올지 모른다”고 라오싼을 부르며 울부짖는 징추의 모습이 독자의 눈시울을 젖게 만든다. 라오싼이 자신의 동생에게 맡기며 “징추가 행복하게 살면 전하지 말고 삶이 힘들면 전해 달라”고 한 편지에는 “세상에 너를 사랑한 한 남자가 있었고, 그는 네가 25세가 될 때까지는 못 기다렸지만 평생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화장한 라오싼의 유골은 산사나무 아래 묻혔다.

개혁개방 30여 년 만에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사는 중국인들은 현기증이 날 정도의 빠른 성장과 치열한 경쟁으로 눈에 붉은 핏기가 가시지 않고 있다. 소설 속 징추의 ‘산천수처럼 맑은 눈’을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이기 때문에 이 소설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평이다.

당대를 대표하는 작가 쑤퉁(蘇童) 씨는 “중국 순정소설의 성전”이라고 극찬했고, 왕멍(王夢) 씨는 “우리는 다시는 그런 순수의 시대를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영화배우 쑨리(孫儷) 씨는 “눈물 속에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빠른 변화 속에 전통 가치관은 무너지고 있으나 새로운 것은 아직 확립되지 않은 가치관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는 중국인들. 이 소설의 인기는 그들이 무엇을 그리워하는지를 보여준다. 전문 작가가 아닌 아이미 씨는 인터뷰를 일절 사절하며 신비에 싸여 있다고 중국 언론은 소개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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