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4집가수” 제주의 ‘재주소년’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9월 13일 17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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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운동장에 앉아 붉게 해가 지는 곳을 보며 나의 유년에게 인사하네. 두고 온 마음을 사랑을.'(유년에게)

유상봉(27) 박경환(26)으로 이뤄진 포크 듀오 재주소년(才洲少年)이 최근 4집 앨범 '유년에게'를 발표했다. 제주에서 대학을 다닌 이들은 지역에 대한 애착을 표시하면서 음악적 '재주'라는 말을 연관시켜 듀오의 이름을 지었다.

이들은 2006년 3집을 낸 뒤 나란히 군에 입대했고 지난해 1월 발매한 미니앨범(EP)을 제외하면 4년 만에 정규앨범으로 찾아왔다. 유년시절의 아기자기한 추억을 '이 분단 셋째 줄'(2집)과 '귤'(1집)로 노래한 바 있는 재주소년은 아예 이번 앨범을 유년의 추억을 주제로 한 열두 곡으로 빼곡히 채웠다. 10월 2, 3일 오후 5시에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 큐브릭에서 '이야기 콘서트'를 연다.

10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카페에서 만난 재주소년은 캠퍼스의 동아리 방에서 흔히 봄직한 수더분한 사내들이었다. 평소 말수가 적다는 유 씨를 대신해 대부분의 대답을 박 씨가 했다. 박 씨는 "새 앨범 작업을 하려고 그동안 만들어놓은 곡들을 추려보니 유년을 노래한 곡들이 많아 추억을 집대성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유년기를 함께 보낸 두 사람에겐 추억의 교집합이 많다. 부산에서 태어난 유 씨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경기 고양 시 일산으로 전학 오면서 같은 학교에 다닌 박 씨와 친구가 됐고 중3 때는 함께 5인조 록 밴드 활동을 하며 사춘기를 보냈다.

강렬한 전자음과 자극적인 가사를 내세운 노래들이 주류가 되어버린 가요계에서 통기타 반주에 맞춰 소박한 가사를 담백하게 읊조리는 재주소년은 오히려 '튄다'. 제주 곳곳의 사진을 담은 음반 재킷의 영향인지 음반의 모든 트랙이 끝나갈 때쯤이면 제주 올레길 한 코스를 다 걸은 양 개운해진다.

어쿠스틱 사운드를 고집하던 재주소년은 이번 앨범에서 '벡(Beck)'과 '비밀의 방' 등 일부 곡에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넣는 '실험'을 했다. 유 씨는 "데뷔 8년을 맞은 만큼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며 "처음 기타를 치고 뮤지션을 꿈꾼 것도 너바나와 메탈리카 같은 록·메탈 음악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박 씨는 "앨범 전체를 일렉트로닉 사운드 곡으로만 담고 싶어 10곡을 그렇게 만들었다가 만족스럽지 않아 엎어버리고 몇 곡만 남겼다"고 말했다.

'소년의 고향'에는 어린이 6명의 합창도 들어갔다. "친한 형과 누나의 아이들을 섭외했어요. 차 안에 노트북과 마이크를 실어놓고 야외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을 불러 모아 녹음했죠. 사실 그다지 노래를 잘 하진 않아요. 박자도 제각각이고 한 아이는 혼자만 낮은음으로 부르고요. 그게 오히려 순수하고 즐거워 보이죠."(박)

박 씨는 중학교 수학여행 때 처음 본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에 반해 2002년 제주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2년 뒤 유 씨도 제주에 내려와 한라대 생활음악과에 입학했으나 한 학기 만에 학업을 접고 서울로 돌아갔다. 평소 각자 음악 작업을 하면서 온라인으로 음악 파일을 전송해가며 교류한다. 이번 앨범 녹음은 유 씨가 제주로 내려가 박 씨의 기숙사에서 3주간 함께 지내며 마무리했다. "한라산 올라가는 길에 있는 대학 건물들에 빈방이 많아 거기서 녹음했어요. 야경도 멋지고 주위가 고요하거든요."(박)

데뷔 8년을 맞은 소감을 물으니 4집 가수답지 않은 소박한 대답이 돌아왔다. "할아버지 팔순잔치에 갔더니 가족 영상에 나온 제 사진에 '대학생 가수'라고 써있더라고요. 어머니가 넣으셨대요. '아, 내가 대학생 가수구나…'하고 깨달았죠. 이제 미용실에서 '뭐 하는 분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떳떳하게 '가수'라고 대답해요. 예전엔 민망해서 그냥 '학생'이라고 했는데…."(박) "저는 아직… 가수라고 말할 기회조차 없었어요."(유)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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