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도서관은 책을 읽으러 가는 곳이죠? 그런데 오늘은 도서관이 여러분을 찾아왔어요.”
서울 중랑구 면목5동 만나지역아동센터는 차 한 대 지나가기도 어려운 좁은 골목, 다닥다닥 붙은 집 사이에 자리해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등 어려운 형편의 아이 50여 명이 공부방에서 공부를 하고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7일 오후 4시 이 센터의 공부방에 초등학생 7명이 모였다. 서울 중랑구립정보도서관의 ‘찾아가는 도서관’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동화 ‘어느 날 우리 반에 공룡이 전학 왔다’를 읽고 토론수업을 하는 날이었다.
도서관에서 나온 토론강사 김영란 씨가 “먼저 인사하고 시작하자”며 인사를 건네자 아이들은 어색한 듯 작은 목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답했다. 수업은 책 내용의 일부를 연극으로 만들어 아이들이 직접 등장인물이 되어 본 뒤 느낀 점을 이야기하고 적어 보는 순서로 한 시간 정도 진행됐다.
작았던 아이들 목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졌다. 공룡 옷을 입을 수 있는 주인공 토토 역할에 아이 두 명이 한꺼번에 지원하자 김 씨는 “어떻게 할래?”라고 물었다. 아이들은 “가위바위보로 정하자”고 했다. 역할을 정하고 연극을 연습하는 과정 모두 아이들이 스스로 참여하도록 진행됐다.
“우리 주변에 정말 공룡 같은 친구는 없을까요? 그런 친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배려심 있게요!” “그럼, 배려가 뭘까?” “입장 바꿔 생각하는 거예요.”
30분 정도 역할극을 한 뒤 아이들은 느낀 점을 색종이에 써서 원하는 모양으로 오려 도화지에 붙였다. ‘토토야 미안해. 많이 아프지.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아이들아 토토가 공룡이라고 해도 너희에게 피해 준 거 없으니까 토토의 맘도 이해해줘’와 같은 글들이 구름, 사과, 하트, 책 모양의 색종이들을 수놓았다. 수업이 끝나자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왔다.
“선생님 내일 또 와요?” “재미있어요. 또 오세요.”
박창조 만나지역아동센터장은 “센터에 오는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의 무관심과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사교육은 상상도 하기 힘들다”며 “수업을 들어 보니 아이들이 스스로 참여하고 생각하도록 돕는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고 말했다.
‘찾아가는 도서관’은 중랑구립도서관이 중랑구 내 지역아동센터 10곳을 대상으로 6월부터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한부모가정, 다문화가정,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등 도서관을 찾아오기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에게도 책과 친숙해질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시작됐다. 서울문화재단 캠페인 ‘책 읽는 서울’의 ‘한 도서관 한 책 읽기’ 대상도서로 선정된 책 가운데 ‘어느 날 우리 반에 공룡이 전학 왔다’와 ‘국경 없는 마을’을 각 센터에 나눠준 뒤 전문 강사와 사서가 찾아가 한 시간가량 수업을 한다. 역할극 외에도 내가 선택한 나라의 문화책자 만들기, 신문을 활용해 세계지도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모두 아이들이 직접 참여하고 상대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도록 돕는다.
도서관 사서 이지유 씨는 “대부분의 센터들이 센터장들의 사비와 구청 지원금으로 어렵게 운영되고 있어 전문적인 외부강사를 쓸 형편이 되지 않는다. 보통 학과공부를 도와주는 정도”라며 “이런 상황에서 ‘찾아가는 도서관’ 프로그램은 전문강사의 독서수업이라는 점에서 1년씩 장기간 수업을 해줄 수 있겠느냐는 요청이 올 정도로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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