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시계가 간다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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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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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시계축제 바젤월드 ‘2010 트렌드’

스위스 바젤에서 18일부터 25일까지 열린 세계 최대 시계 보석 박람회인 ‘바젤월드 2010’ 행사장에서 관람객들이 올해 시계 트렌드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오른쪽은 스위스 명품시계 브랜드인 블랑팽이 창립 275주년을 기념해 내놓은 컴플리케이션 모델 ‘리 이매진드 빌르레 문페이즈’. 바젤=블룸버그 연합뉴스
스위스 바젤에서 18일부터 25일까지 열린 세계 최대 시계 보석 박람회인 ‘바젤월드 2010’ 행사장에서 관람객들이 올해 시계 트렌드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오른쪽은 스위스 명품시계 브랜드인 블랑팽이 창립 275주년을 기념해 내놓은 컴플리케이션 모델 ‘리 이매진드 빌르레 문페이즈’. 바젤=블룸버그 연합뉴스

범인(凡人)들의 접근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던 명품 시계가 대중에게 한발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고고하게 전통과 예술성을 자랑하며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표를 붙였던 세계 최고의 시계 메이커들이 ‘접근 가능한 명품’을 내놓고 있는 것. 세계 경제 불황의 그림자가 최고급 명품 시장에까지 미친 여파다. 최근 스위스 북서부 바젤에서 세계 최대 시계 축제인 ‘바젤월드 2010’이 열렸다. 여기서도 화두는 ‘팔릴 만한 시계’였다. 2009년 혹독한 한 해를 보낸 시계 업계가 부활의 날개를 한껏 펼 수 있을지 세계의 이목이 바젤에 집중됐다.

○ 세계 시계 시장의 활성화 기대

바젤월드 개막을 앞두고 바젤의 하늘은 잔뜩 찌푸린 채 당장 비라도 뿌릴 태세였다. 바젤월드조직위원회의 자크 뒤셴 위원장은 “최근 국제 경제 상황이 여전히 불안정한 국면에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시기가 시계 업계에는 시험기”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행사가 개막된 18일(현지시간), 전시관이 문 열기 1시간 전인 오전 8시부터 바젤 시내와 인근 고속도로는 밀려드는 차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바젤월드의 성공을 예감하게 하는 신호였다.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관람객 수도 크게 늘었고, 덩달아 분위기도 훨씬 뜨거워졌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 스와치 그룹의 론진 브랜드 매니저 김소연 이사는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몰려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며 “금융위기 이전의 바젤월드 분위기로 다시 돌아간 것 같다”고 말했다.

시계의 본고장 격인 스위스 바젤에서 매년 열리는 바젤월드는 그해 명품 시계 시장의 동향을 미리 볼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시계·보석 박람회다. 1917년 스위스 산업박람회(MUBA)를 계기로 시작된 바젤월드에는 각국의 시계 대표 브랜드와 바이어, 언론이 몰려든다. 참여 기업들은 매년 신제품과 브랜드의 기술력을 총동원한 ‘마스터피스’를 내놓으며 각축을 벌이는데, 일부 유명 브랜드들은 바젤월드에서만 신상품을 공개할 정도로 그 위상이 대단하다. 바젤월드는 세계 시계 시장의 축소판인 셈이다.

올해 바젤월드에는 45개국에서 1915개 관련 회사가 참가해 16만 m²(약 4만8000평) 규모의 전시관을 가득 채웠다. 롤렉스, 오메가, 스와치, 파테크필리프 등 유명 브랜드가 가득한 전시장의 부스에는 줄을 서서 관람할 정도로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8일간 진행된 이번 행사에 바이어만 10만여 명이 다녀갔다는 게 조직위의 추산이다. 미국에서 온 프리랜서 시계 전문 기자 윌리엄 셔스터 씨도 “시계 시장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며 “제품과 디자인 역시 지난해보다 훨씬 더 다양해지고 주목할 만한 상품도 대거 눈에 띈다”고 설명했다.


○가격 경쟁력 높인 명품 시계들

세계 시계 시장의 빠른 회복을 기대하는 브랜드들이 이번 바젤월드에 선보인 제품들의 특징은 크게 클래식한 디자인과 가격 경쟁력으로 요약된다. 불과 2, 3년 전만 해도 시계 브랜드들은 한층 복잡한 기능과 정교한 기술을 자랑하며 수억 원대의 제품을 앞 다퉈 내놓았지만, 올해는 300만∼500만 원대 제품이 주종을 이뤘다.

브라이틀링 관계자는 “많은 브랜드들이 새로운 기술을 내놓기보다는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했고, 디자인 측면에서도 혁신성보다는 기존 베스트셀러 라인을 새롭게 선보이며 클래식한 느낌을 강화했다”고 전했다. 많이 팔 수 있는 시계를 내놓아 시장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데 업계의 중지가 모아진 까닭이다.

동시에 올해 바젤월드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시계를 구동하는 핵심 부품인 무브먼트의 자체 개발이 이슈로 떠올랐다. 그동안 ‘메이드 인 스위스’ 시계의 대부분에 무브먼트를 공급해 온 스와치 그룹이 ‘ETA 무브먼트’의 공급을 제한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브랜드들이 경쟁적으로 무브먼트 개발에 나선 것이다. 최고급 브랜드 위블로에서부터 다양한 크로노그래프 제품을 선보이는 태그호이어까지 여러 브랜드가 올해 무대에서 자체 개발한 무브먼트 탑재 모델을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다.

손목 위, 그 남자의 로망
■ 새로 선보이는 브랜드 ‘뉴 페이스’



‘패션의 완성’ ‘명품의 마지막’ 등 시계를 수식하는 말들이 보여주듯 이 물건은 시간을 보여주는 도구가 아니라 명품 패션의 방점(傍點)을 찍는 수단이다. 특히 남성들에게 각별한 존재다. ‘아침마다 시계태엽을 감으면서 행복감을 느낀다’, ‘어떤 시계를 찼는지를 보고 비즈니스 상대의 수준을 가늠한다’는 남성들이 늘고 있는 것. 실제로 국내 백화점에 시계 전문 매장이 처음 들어선 2006년 100억 원대에 불과했던 고급 시계 시장이 4년 사이 1000억 원대로 급증한 데는 패션에 눈뜬 남성들의 역할이 컸다. 자동차에 대한 로망이 손목으로 옮겨진 듯 남성들의 시계 사랑은 극진하다. 올해는 ‘바젤월드 2010’에서 보듯 각 브랜드들이 ‘접근 가능한 명품’을 경쟁적으로 선보여 시계 마니아의 마음을 더욱 들뜨게 할 것으로 보인다.

○ 클래식한 명품 라인의 새 얼굴


최상위 브랜드들은 클래식한 아름다움이 최고라는 듯 바젤월드에서도 대표 컬렉션을 재해석한 모델들을 선보였다. 지나치게 화려한 장식은 배제한 절제미와 집약된 기술력이 두드러졌다.

위블로는 자체 개발한 무브먼트(시계 구동장치)인 ‘유니코(UNICO)’를 장착한 첫 모델인 ‘킹 파워’를 선보였다. 1980년대 유럽 왕가에서 즐겨 착용하면서 ‘왕의 시계’라는 별칭을 얻은 위블로의 대표 라인 ‘빅뱅’의 최신 모델이다. 우선 시계 역사상 최초로 천연 고무로 스트랩을 만든 위블로의 대표 모델답게 천연 고무와 골드 소재를 혼합해 고유의 콘셉트를 강조했다. 다른 빅뱅 모델처럼 킹 파워도 여러 층으로 시계 케이스가 만들어졌는데, 케이스 각도는 전보다 더 선명해지고 날카로워졌다. 여기에 크로노그래프(시간을 기록하는 장치)를 수월하게 작동시킬 수 있도록 푸시 버튼을 더 돌출시켰다. 남성적인 카리스마가 짙어진 디자인이다. 8분의 1초까지 잴 수 있는 크로노그래프는 기능적으로도 뛰어나다. 사파이어 크리스털로 된 48mm의 빅 다이얼(시계판)이 사용됐다. 100m 방수가 가능하고 42시간 파워리저브 기능을 갖췄다.

올해 창립 275주년을 맞은 블랑팽은 대표 컬렉션인 ‘빌르레(Villeret)’를 재해석한 기념 모델을 내놓았다. 절제된 미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빌르레 라인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리 이매진드(re-imagined) 빌르레 문페이즈’가 그 주인공. 달이 차고 기우는 월령을 표시하는 문페이즈와 연월일 표시는 물론 윤년 표기까지 정확하게 하는 퍼페추얼 캘린더까지 갖춘 컴플리케이션 모델이다. 또 뒤커버를 의미하는 하프 헌터 케이스(half-hunter case)까지 지닌 완벽하리만큼 안전한 캘린더 매커니즘을 자랑한다. 여기에 블랑팽이 오랜 시간을 공들여 개발한 무브먼트까지 탑재해 가치를 높였다. 무브먼트는 티타늄 소재의 밸런스 휠, 골드 소재의 조정 나사, 세 개의 메인 스프링 배럴 등으로 구성돼 눈으로 보기에도 견고한 아름다움이 빛난다.

글라쉬테 오리지널은 베스트셀러 ‘파노마틱 XL’의 새 얼굴 ‘파노마틱 루너 XL’을 선보였다. 세련된 회색 다이얼 위에 중앙에서 벗어난 메인 다이얼과 작은 세컨드 다이얼이 은은한 회색빛을 내뿜는다. 2시 방향의 문페이즈 역시 회색빛 하늘 위에 떠 있는 달과 별의 모습을 형상화했고, 5시 방향에는 날짜를 표시하는 데이트 창이 있다. 숫자를 나타내는 인덱스와 시곗바늘은 화이트골드 소재로 모던한 디자인 특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42mm의 빅 다이얼로 스틸 소재 케이스에 회색의 악어가죽 스트랩을 매치했다. 장식적 요소가 집약된 무브먼트도 투명한 사파이어 크리스털 백 케이스를 통해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 소장 가치 높인 기능성 라인


차별화된 디자인과 전문가형 기능성을 자랑하는 시계도 해마다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최근 젊은 남성 고객들의 열광적 지지를 등에 업고 이번 바젤월드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보석 시계로 잘 알려진 해리 윈스턴은 자체 개발한 무브먼트를 장착한 ‘프로젝트 Z6’와 ‘오퍼스(OPUS) 10’ 등을 선보였다. 해리 윈스턴은 시계 업계에서는 드물게 매년 시리즈로 제품을 내놓고 있다. 이 중 2001년부터 시작된 오퍼스 시리즈는 해마다 당대 최고로 꼽히는 독립된 시계 제작 장인과의 협업으로 신제품을 내놓으며 업계와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왔다. 오퍼스 시리즈의 10주년을 맞은 올해 프로젝트의 주인공은 장프랑수아 모종 씨. 그는 이번 오퍼스 10을 천체의 자전 운동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는데, 고정된 다이얼에서 탈피해 회전하는 프레임을 적용시킨 것이 특징이다.

항공 시계의 대명사이자 크로노그래프 시계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브라이틀링은 올 신제품에서도 ‘전문가를 위한 장비’라는 모토를 그대로 보여줬다. 이번에 주목할 만한 모델은 브라이틀링의 베스트셀러인 ‘슈퍼오션’. 1957년에 디자인된 브라이틀링의 전설적인 다이버 전문가용 시계를 이전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완벽하게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시켰다. 블랙 다이얼에 다섯 가지 색상(옐로, 레드, 블루, 실버, 블랙)의 베젤(시계 테두리)이 경쾌한 조화를 이뤄 한층 젊고 감각적인 이미지로 디자인됐다. 지름 42mm에, 스위스 크로노그래프 공식 인증기관(COSC)에서 합격 판정을 받은 ‘칼리버 17’ 무브먼트를 탑재했다. 1500m 물속에서도 방수 기능을 발휘한다.

태그호이어는 자체 개발한 ‘칼리버 1887’ 무브먼트를 적용한 모델을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태그호이어의 첫 작품인 1887 무브먼트는 기존 무브먼트와 비교해 움직임이 30% 정도 더 효율적이며, 콤팩트한 사이즈에 정교함을 자랑한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카레라 1887 크로노그래프’는 41mm 스틸 케이스, 태키미터(속도 측정을 위한 눈금표기)가 새겨진 베젤, 블랙 또는 실버 다이얼 등이 특징이다.

파일럿과 다이버 등을 위한 전문 시계를 선보이는 벨&로스의 신제품은 군용 카무플라주(보호색 등을 통한 위장술)를 추구한다. ‘밀리터리 세라믹’ 모델로 실제 전투 파일럿을 위해 고안됐다. 군용 위장을 위한 카키색 세라믹으로 만들어졌고, 발광 다이얼과 시곗바늘, 반사 방지 글래스 등이 밤낮으로 최고의 가시성을 확보해준다.

○ 색상과 소재감이 다양해진 여성 워치



여성용 시계는 갈수록 패션성을 더하고 있다. 스카프 등 다양한 액세서리로 포인트를 주는 여성들에게 시계로 패션을 완성할 수 있도록 다양한 디자인과 소재와 컬러가 제시되고 있다.

베르사체의 새로운 컬렉션인 ‘이온(EON)’은 베르사체 여성 시계의 특성과 전통적인 매력을 모던하게 표현하고 있다. 다이얼을 둘러싼 케이스는 최고급 로즈골드로 도금된 스테인리스 스틸로 정교하게 만들어졌고, 다이얼도 다이아몬드 인덱스로 화려하게 꾸며졌다. 케이스는 바깥쪽 링과 안쪽 링이 분리된 채 좌우로 움직여 장식성을 극적으로 표현했는데, 바깥쪽 링 둘레에 베르사체 로고를 새겨 화려함을 더했다. 로즈골드 색상이 스타일리시한 느낌을 주며, 다이아몬드가 박힌 케이스와 새틴 소재의 부드러운 시곗줄은 여성스러움을 돋보이게 한다.

세 개의 돛대를 가진 배에서 이름을 따온 에르메스의 ‘클리퍼(Clipper)’는 손목이 가는 여성용 시계에서부터 남성 사이즈까지 우아한 디자인을 일관되게 고수하는 것이 특징. 시계 안에 보석이 장식돼 있고, 다양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시계 테두리는 회전이 가능하고 박아 넣은 볼트도 금으로 조각됐다. 종류는 스틸, 스틸&옐로골드, 스틸&로즈골드 등으로 다양하게 선보였다.

펜디의 ‘셀러리아(Selleria)’ 워치는 10가지가 넘는 다양한 색상의 가죽 시곗줄로 팔색조의 시계를 연출할 수 있다. 스틸 베젤에 바느질을 한 듯한 느낌의 독특한 디자인도 눈길을 끈다. 또 자개 느낌이 나는 소재로 된 문자판과 로마자 인덱스가 어우러져 클래식한 느낌이 난다. 또 시곗줄을 쉽게 바꿀 수 있는 베젤을 장착해 시계 헤드 옆 부분을 누르면 시곗줄 고리를 교체할 수 있다. 밴드는 핑크, 블루, 바이올렛, 브라운, 그레이, 블랙, 화이트 등의 컬러로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바젤=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디자인=공성태 기자 coon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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