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따뜻해졌다고요? 원작따라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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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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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소설 ‘낮잠’으로 연극연출 데뷔한 허진호 감독

허감독은 “원래 영화에서 한 호흡으로 가는 롱테이크 촬영을 좋아했기에 좀 긴 롱테이크를 찍는다는 기분으로 연극연출을 맡았는데 예상보다 훨씬 힘겨우면서도 흥미로운 작업이 됐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허감독은 “원래 영화에서 한 호흡으로 가는 롱테이크 촬영을 좋아했기에 좀 긴 롱테이크를 찍는다는 기분으로 연극연출을 맡았는데 예상보다 훨씬 힘겨우면서도 흥미로운 작업이 됐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감독은 지금 ‘외출’ 중이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백암아트홀에서 공연 중인 연극 ‘낮잠’의 연출을 맡아서다. 연극연출은 처음이다. 게다가 자신이 쓴 이야기가 아니라 원작(박민규 씨의 단편소설)을 극화하는 것도 처음이다.

“마침 이상문학상작품집에서 ‘낮잠’을 읽고 재미있어서 극화해 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연극연출 제의가 왔어요. 연극은 연출은 고사하고 공연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지만 새로운 시도란 생각에 응하면서 ‘낮잠’을 택했습니다.”

소설 ‘낮잠’은 요실금에 걸린 노신사 영진이 고향 인근 요양원에 들어갔다가 고교시절 짝사랑했던 여인 이선을 만나 뒤늦게 사랑을 꽃피운다는 내용이다. 청춘의 열병 같은 사랑의 심리를 섬세한 영상언어로 그려온 허 감독이 노년의 사랑을 다룬 것도 처음이다. 허 감독은 “고교생의 사랑을 다룬 것도 처음”이라며 웃었다. 연극은 요양원의 영진과 이선뿐 아니라 고교시절의 두 사람의 추억을 함께 무대 위로 불러낸다.

“가슴 떨린 옛사랑을 다시 만났는데 남자는 요실금에 걸리고 여자는 치매에 걸려 대소변도 못 가리는 처지라는 묘한 아이러니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원작의 맛을 그대로 살리되 영진의 친구이자 이선을 놓고 삼각관계를 펼치는 동필의 비중을 늘려 노년의 우정도 함께 담아봤습니다.”

실제 무대를 접한 관객 중에 눈시울을 뜨겁게 붉히는 이가 많다. 노추(老醜)란 단어가 현실이 된 이들이 고교생 못지않은 열정으로 사랑과 우정을 되찾아가는 과정이 가슴 뭉클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진호라는 명성에 걸맞은 파격이나 예리함은 부족해보였다. 지난해 발표한 영화 ‘호우시절’이후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따뜻해졌다”는 세간의 평가가 맞는 걸까. 허 감독은 웃음으로 즉답을 피했다. “원작에 충실하다 보니…”라며 미소만 지었다.

분명한 것은 연극연출 경험이 그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준 점이다. “전 원래 영화를 찍을 때는 리딩(낭독연습)도 하지 않고 현장 분위기를 살려 즉흥적으로 찍을 때가 많았는데 이번에 연극연출을 하면서 리딩이 배우가 인물에 동화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현장에서 시간낭비를 줄여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또 영화가 감독이 원하는 장면만 편집하는 감독의 예술이라면 연극은 공연이 이뤄질 때마다 배우에 의해 새롭게 탄생하는 배우의 예술이란 점도 새삼 깨쳤죠.”

그는 그런 연극연출이 “정말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영진 역에 이영하, 김창완, 오광록 세 명의 배우가 출연하는데 개성이 다 달라 “마치 세 편의 영화를 찍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이영하 씨는 굉장히 정확한 연기로 무대를 장악한다면 김창완 씨는 모든 대사를 자기 것으로 소화해내는 자연스러움이 놀라왔고, 오광록 씨는 본인이 가진 정서와 에너지 자체가 좋아요.”

그는 아직 연극의 참맛을 모른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연극 첫 장면을 고향 요양원에 내려온 영진의 쓸쓸한 뒷모습에서 끌어낸다든지 일체 영상을 쓰지 않으면서 반투명막을 활용해 주인공들의 고교시절 추억의 장면을 그림처럼 담아낸 점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요즘 부쩍 좋은 연극을 찾아보기 시작한 그는 “좋은 기회가 되고 좋은 작품을 만난다면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 차기작이 기대된다. ‘낮잠’은 M뮤지컬컴퍼니가 기획한 ‘감독, 무대로 오다’의 두 번째 작품으로 3월 28일까지 공연한다. 4만∼5만 원. 02-764-7858∼9.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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