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부안군 구름뫼마을에 서 있는 ‘당산할매’ 나무 아래서 비를 피하는 아이들. 그림 제공 휴머니스트
◇당산 할매와 나/윤구병 글·이담 그림/60쪽·1만2000원·휴머니스트
저자는 1996년 충북대 철학과 교수직을 그만두고 농사꾼이 되어 전북 부안군 구름뫼 마을에 변산공동체를 꾸렸다. 저자는 이 책에 구름뫼 마을 개울가의 커다란 당산나무(마을을 지켜주는 신령이 깃들어 있다고 여겨서 모시는 나무)와 얽힌 인연과 교감을 담았다. 당산나무는 그의 스승이며 마을 사람들의 어머니이자 할머니이다.
그는 변산에서 살 곳을 찾다 할매를 처음 만났다. 할매를 보는 순간 그는 그 자리에 못 박혔다. 그가 본 나무 중 가장 예뻐 보였다. 그는 생각했다. “여기 밭을 구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날마다 이 나무를 바라보며 살 수 있을 텐데….”
마을 어른들에게 나무의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어른들은 “우리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그 나무에 올라가 놀았다”고 대답했다. 그해 봄부터 마을에 터를 잡고 살았다. 밭을 일구고 감자와 옥수수를 심었다. 낟알로 심은 곡식은 되는 게 없었다. 산비둘기와 꿩이 와서 쪼아 먹었다. “당산 할매는 새도 좀 안 봐 주시나.”
그래도 할매에게 의지하는 마음은 날로 커졌다. 변산공동체 아이들을 데리고 와 할매 그늘 아래서 고기를 잡고 나물을 캤다. 소나기 끝에 뜬 무지개는 할매가 낭창한 가지로 하늘에 둘러놓은 것 같았다. 할매는 젖꼭지가 참 예뻤다. 처음 봤을 때 나무도 젖이 있네 하고 웃었다. 알고 보니 가지가 떨어져 나간 자리가 빗물이나 벌레 때문에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겉껍질로 감싼 것이었다.
초가을이 되면서 반딧불이가 날아다녔다. 할매는 새 잎을 틔우는 일도, 잎을 떨어뜨리는 일도 서두르지 않았다. 어느 눈 오는 날 할매가 눈을 부르는 모습을 보았다. 그의 나이 일흔이 가까워지자 마음은 더 아래로 흐르고 싶어졌다. 더는 내려갈 곳이 없는 맨 밑바닥에 몸을 눕히고 싶어졌다. 아래로, 아래로 할매 뿌리가 가늘어지면서 흙과 하나가 되듯이…. 할매가 넌지시 등을 떠미는 것을 느꼈다. 배낭을 메고 마지막으로 할매를 찾아갔다. “할매, 저 가요. 다시 못 뵐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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