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765>子路曰, 桓公이 殺公子糾하야늘 召忽은…

  • Array
  • 입력 2009년 11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자로가 말했다. “제나라 환공이 공자 규를 죽이거늘, 소홀은 그를 따라 죽었으나 관중은 죽지 않았으니, 관중은 어질지 못하다 하지 않겠습니까?”

管鮑之交(관포지교)라고 하면 管夷吾(관이오)와 鮑叔牙(포숙아)의 우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관이오는 齊나라 桓公을 도와 그를 覇者(패자)로 만든 管仲(관중)이다. 환공은 公子(공자)인 糾(규)를 살해했으나 규의 신하였던 管仲은 殉死(순사)하지 않고 환공을 섬겼다. 이 일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논어’의 ‘憲問(헌문)’에서 子路는 그 점을 공자에게 질문했다.

춘추시대 제나라는 襄公(양공) 때 정치가 혼란했다. 鮑叔牙(포숙아)는 公子인 小白을 모시고 거(거) 나라로 망명했다. 소백은 양공의 이복동생, 포숙아는 그의 傅(부)였다. 이 무렵 公孫無知(공손무지)가 양공을 살해하자 管仲과 召忽은 公子인 糾를 모시고 魯(노) 나라로 망명했다. 규는 소홀의 이복동생 혹은 이복형이라고 한다. 소백과 규는 각각 제나라로 먼저 들어가려고 싸웠는데, 소백이 이겨 제나라 군주가 되었다. 이 사람이 환공이다.

환공은 노나라 莊公(장공)에게 압력을 가해 규를 죽이게 했다. 소홀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위의 ‘召忽死之’는 ‘그를 따라 죽었다’이다. 하지만 관중은 죽지 않았을 뿐 아니라, 포숙아의 추천으로 환공의 신하가 되어 재상에까지 올랐다. 기원전 685년의 일이다. 자로는 이 일을 거론하고 ‘曰不仁乎’라고 했다. ‘어질지 못하다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는 뜻이다.

니체는 과거를 이야기하는 방식에 기념비적 역사, 골동품적 역사, 비판적 역사의 셋이 있다고 했다. 공자의 문하에서는 과거 사실에서 현재적 의미를 생산해내는 비판적 역사를 공부했다. 우리가 고전과 역사를 공부하는 방식도 그러해야 하리라.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