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군대 이야기’ 여자들이 싫어한다고?

  • 입력 2009년 9월 4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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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뮤지컬 ‘스페셜 레터’ ‘바람을 불어라’ 인기

요즘 대학로에선 ‘금녀의 공간’ 군대를 소재로 한 창작뮤지컬이 인기다. 뮤지컬 관객의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의외다. ‘술자리 화제 중에서 한국 여성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군대와 축구 이야기’라는 속설이 있지 않은가. 둘을 결합한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야말로 여성들이 낀 자리에서 기피1호 화제로 꼽히지 않았던가.

그러나 어차피 혐오와 열광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 혐오의 감정 아래 감춰진 관심을 불씨 삼아 호기심을 자극하는 군불을 때다보면 마음의 문은 오히려 쉽게 열리는 법이다. 이런 역발상이 돋보인 작품이 ‘스페셜 레터’(작·연출 박인선, 작곡 마창욱)다.

이 작품은 여성들이 군대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를 공략한다. 바로 남자친구의 군 입대 경험이다. ‘은희’란 여자 같은 이름을 지닌 남자주인공(하지승·곽병진)은 스물일곱이란 늦은 나이에 입영통지서를 받는다. 그는 순규라는 남자이름을 지닌 선머슴 같은 여자후배(최주리·문진아)를 사랑하지만 군대 간 동안 기다려달라는 말을 차마 못해 고백을 미룬다.

‘스페셜 레터’는 여성들에게 너무도 익숙한 그 구도 속으로 군대 이야기를 삽입한다. 겉 그림인 사회와 속 그림인 군대를 이어주는 매개체는 ‘특별한 편지’다.

어느 날 은희는 김상호 병장이란 생면부지의 군인으로부터 ‘사귀어 보자’는 편지를 받는다. 기겁을 했지만 몇 달 앞서 입대한 친구 이철재 이병의 편지를 읽고 사태를 파악한다. 이철재 이병이 힘든 내무생활에서 벗어나려고 최고참인 김 병장에게 자신을 여자로 둔갑시켜 소개한 것이다. 친구를 위해 은희는 울며 겨자 먹기로 여자로 가장해 답장을 쓰고, 은희를 속으로 좋아하는 순규는 이를 돕는다.

관객은 이렇게 오가는 편지를 따라 군대라는 ‘코믹한’ 공간으로 빠져든다. “세상엔 남자 여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먼저 오신 분들과 늦게 온 놈만 있더라”는 독특한 서열 짓기 문화. 병장-상병-일병-이병 순으로 내려가면서 눈덩이처럼 커지는 얼차려의 메커니즘. 마지막으로 독일 프로축구리그인 ‘분데스리가’에 빗대 군대스리가로 불리는 군대축구의 특별함. 김 병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군대스리가의 규칙을 간단히 설명한다. 전반 세 시간, 후반 세 시간 동안 무조건 공격 축구야. 일병은 무조건 길게 건너편으로 차주기, 상병은 병장에게 센터링, 병장은 골문 앞에서 주워먹기. 넌 이등병이니까 염통이 터져라 뛰어. 알겠나?”

이 작품과 달리 군악대를 배경으로 한 ‘바람을 불어라’(연출 권호성, 작·작곡 최원형 정원보)에서 관객은 군대라는 폐쇄된 공간 속으로 바로 들어간다. 출연배우 전원이 직접 연주하는 서정적 브라스 연주가 낯섦을 완화시켜준다.

사단 군악대의 뺀질이 황 상병(한성용)이 고장 난 트럼펫을 고쳐오겠다는 핑계로 특별휴가를 갔다가 귀대하지만 트럼펫의 마우스피스(입에 대고 부는 부분)가 없어진다. 이를 둘러싸고 군악대 내무반에서 갖가지 억측과 오해가 이어진다.

황 상병이 자신의 여자친구를 가로챘다고 믿는 이병(임하람), 듬직하게 여겼던 부하가 자신의 팬티를 훔친 것으로 오해한 여군 하사(조민희), 말귀 못 알아듣는 고문관 일병(이정민)과 만사를 대충 넘기려는 말년 병장(설하)의 엇박자 행보…. 여기에 국방부장관이 친견하는 사단창립 기념행사 준비까지 겹치면서 내무반은 사분오열의 위기에 처한다.

계급서열로 인해 엇갈린 인간관계가 빚는 해프닝, 고문관, 군기잡기, 연인의 이별통보, 군대축구 등 ‘스페셜 레터’에 나오는 요소가 빠짐없이 등장한다. 하지만 바깥사회와 단절된 채 전개되는 데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은 반면 멜로라인은 취약해 극의 집중도가 떨어진다. 음악의 서정적 울림은 ‘바람을 불어라’의 브라스 연주가 뛰어나지만 대중적 친화력은 ‘스페셜 레터’의 ‘말년병장 김 병장’과 ‘군대스리가’ 등이 앞선다.

‘스페셜레터’는 12월 31일까지 대학로 SM아트홀(02-501-7888). ‘바람을 불어라’는 9월 27일까지 원더스페이스 네모극장(02-743-6487).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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