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154>

  • 입력 2009년 8월 9일 13시 49분


제32장 파티가 시작될 때

우승 축하 파티는 성대했다.

파티의 주최는 '배틀원 2049' 운영위원회지만, 이번 대회 독점 중계권을 행사한 <보노보>의 사장 찰스가 막대한 찬조금을 냈다. 장소도 <보노보> 개국 축하쇼를 열었던 공연장을 빌렸고, 초청인사도 로보원 참가자나 관계자 외에 찰스가 따로 청한 VVIP들로 채워졌다. 테러 때문에 시상식이 취소되고, 기자회견도 약식으로 마쳤지만, 축하 파티만은 규모나 순서가 바뀌지 않았다. 찰스가 오랫동안 공을 들인 행사인 것이다.

보안청 특별수사대가 경호를 맡았고, 석범도 협동 파견을 자원했다. 공식 행사가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최 볼테르를 만날 욕심과 경기를 마칠 때까지 돌아오지 않은 서사라에 대한 의혹이 겹쳤기 때문이다.

출입문에 선 석범은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다.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던 파트너 남앨리스 형사가 곁에 없었다. 불과 반 년 전, 두 사람은 바로 이곳에 서서 <보노보> 축하쇼 입장객들의 신원을 파악했다.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지만, 변화가 이렇듯 한꺼번에 몰려들 줄은 몰랐다. 어머니 손미주가 죽었고, 팀원이었던 성창수와 지병식 형사도 죽었으며, 남앨리스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

무사해야 할 텐데…….

결승전 결과가 궁금해서라도 벌써 열 번은 넘게 연락을 했을 사람이다.

그녀의 자가용을 수소문했지만 발견되지 않았다. 특별시 경계를 넘어갈 상황이었다면, 틀림없이 상관인 자신에게 보고를 했을 것이다. 그게 규칙이다.

"또 미등록이라고 막아보지 그래요?"

레드 카펫에 올라선 서령이 석범을 노려보며 싸늘하게 비웃었다. 석범이 검색봉을 휘저으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남앨리스 형사의 찰랑대는 단발머리를 떠올리며.

"팔 미등록, 홍채 미등록, 다리 미등록, 가슴 미등록, 입술 미등록, 어깨 미등록……."

"그만! 그만둬요. 은 검사!"

경호로봇팀장이 다가섰다.

"미안합니다. 어서 들어가세요. 서령 씨!"

서령이 눈을 흘기며 바삐 입장했다. 경호팀장이 석범을 노려보며 따졌다.

"찰스의 변신다리에 얻어맞고 싶어서 그럽니까? 삼중을 넘어 팔중 톱날을 장착했다는데, 무섭지 않아요?"

석범이 검색봉에 뜬 숫자를 내려다보며 동문서답을 했다.

"자그마치 90퍼센트가 기계몸입니다. 뇌만 빼곤 싹 갈아치웠습니다. 기계몸 중독자를 여럿 봤지만 저 정도면 중증 중에서도 중증이에요. 확 이 사실을 폭로해서……."

석범이 갑자기 이야기를 멈추고 레드 카펫이 깔린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흰 드레스 차림의 민선이 차에서 내린 것이다. 꺽다리 세렝게티와 뚱보 보르헤스도 연미복에 나비넥타이로 멋을 냈다. 최 볼테르는 보이지 않았다.

"최 교수는?"

석범이 차 안을 곁눈질하며 민선에게 물었다.

"먼저 떠났어요. 찰스가 보낸 대형 트레일러에 글라슈트를 싣고 출발했거든요."

뒤따라온 경호로봇팀장이 끼어들어 설명했다.

"대회 입상 로봇들을 따로 2층 별실에 전시할 계획인 건 아시죠? 로봇을 실은 트레일러 여덟 대가 3시간 20분 전에 들어갔습니다. 격투로봇들은 무겁고 비싼 데다가 조금만 잘못 다루면 고장이 나기 때문에, 2층 전시장과 이어진 지하주차장으로 직행한 것이죠. 보안검색은 철저하게 했고 특이사항은 없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잠시만 이곳을 맡아 주세요. 난 글라슈트 팀과 함께 들어갔다가 곧 나오겠습니다."

"사고 치진 마세요."

석범은 민선과 나란히 걸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아름다웠다.

"서 트레이너는 아직인가?"

민선이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최 교수는 어때?"

우승까지 하였으니, 연인의 부재가 더욱 가슴 아프리라. 이 순간을 위해, 볼테르와 사라는 몇 년 동안 자신들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글라슈트를 손보느라 바빴어요. 이제 시합이 없으니 겉만 정비해서 가져가도 되건만 속까지 살펴 바로잡느라 북새통이었죠."

"멋진 시합이었어."

석범이 민선의 손을 가만히 쥐었다가 놓았다. 민선이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고개만 돌렸다.

"최고였죠?"

"그래. 놀라운 속도였어. 서트레이너가 훈련시킨 펀치였나?"

민선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천천히 고개를 한 번 저었다가 또 한 번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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