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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6월 29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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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기술로 좋은 서비스를 개발해 고객들에게 제공하면 자신들의 몫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래서는 소통이 되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고속성장이 멎고 첨단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열광이 식자 통신업체들은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한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이때 통신업체들이 해법으로 찾아낸 것이 고객과 소통하는 디자인이다. 》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주변에 새로 꾸민 SK텔레콤 매장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밝고 하얗고 꾸민 실내가 눈부셨다. 정면의 흰 벽에서 빨강과 주황 선으로 만든 ‘T’ 로고가 눈에 들어왔다. 두 선이 얽힌 이 로고는 뫼비우스의 띠에서 따왔다. 긴 종이를 180도 꼬아서 붙인 뫼비우스 띠는 안과 밖의 구별이 없는 형태다. 이런 SK텔레콤의 브랜드이미지(BI) 디자인은 고객과의 소통을 원하는 강한 욕구 때문에 탄생했다.
○ SKT의 ‘T’로고: 안과 밖 구별없는 뫼비우스의 띠
이동통신 시장에서 가입자 점유율 50%를 넘는 SK텔레콤은 원래 전화 식별번호인 ‘스피드 011’을 브랜드로 사용했다. 1등을 뜻하는 ‘011’ 브랜드는 고객 충성도가 높았다. TV 광고도 기술의 우위를 강조하는 내용이 많았다. 그러나 2005년 011 번호를 KTF나 LG텔레콤 가입자도 사용할 수 있는 ‘번호 이동성 제도’가 도입되며 얘기가 달라졌다. 더는 나만의 브랜드가 아니었다.
SK텔레콤은 고민 끝에 2006년 새 브랜드 ‘T’를 내놓았다. 그러나 T는 1년이 넘도록 자리를 잡지 못했다. 문제는 BI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BI는 T의 형상이 사각의 문을 향해 선 모양이었다. 색상은 답답해 보이는 회색이었다. 문 밖의 고객을 상대로 ‘우리가 제공하는 첨단 기술의 세상에 들어오세요’라고 제안하는 듯한 공급자 시각이 강했다. 이 브랜드는 전혀 고객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문제는 소통에 있었다. 이를 깨달은 SK텔레콤은 작년 5월 T의 BI를 대폭 개편했다. 이때 도입한 것이 안과 밖의 구분을 없애 고객과의 공존을 의미하는 뫼비우스의 띠였다. 이 곡선을 고객의 꿈을 현실화하는 ‘드림리본’이라고 불렀다.
“대대적인 리뉴얼을 통해 새로운 얼굴인 드림리본을 만들었습니다. 이동통신은 무형의 서비스이기 때문에 단순히 보여주는 디자인을 벗어나야 하죠. 고객이 직접 느끼는 경험을 강조하는 디자인 철학을 반영했습니다. T가 친구 같은 브랜드, 러브마크와 같은 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도록 고객과의 소통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엄종환 SK텔레콤 브랜드 매니저)
곡선형 드림리본은 매장에 들어선 고객의 시각과 동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무심코 그린 선으로 보이지만 사실 코카콜라 BI의 곡선, 아디다스의 3선과 같이 브랜드를 떠올리게 하는 중요한 디자인 요소다.
이 드림리본은 홍보용 리플렛, 매장 공간, 기념품 등 어느 곳에나 적용돼 고객에게 T를 경험케 하는 커뮤니케이션 툴로 사용되고 있다. 작은 탁자 하나도 드림리본의 곡선을 따라 디자인됐다. 유선통신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의 상품 BI에도 드림리본이 사용돼 일관성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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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신 3사 CI-서비스 브랜드, 감성의 붉은색 강조
SK텔레콤, KT의 회사 이미지(CI)는 원래 모두 파란색이었다. LG텔레콤, LG데이콤, LG파워콤 등의 BI에서도 LG그룹 로고는 빨간색이지만 회사명은 회색 계열의 색상이었다. 서비스 브랜드도 마찬가지였다. KT의 서비스 브랜드인 메가패스(초고속인터넷), 네스팟(무선랜), 비즈메카(기업용 정보기술 서비스) 등은 모두 파란색이다. SK텔레콤, LG텔레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통신업체들은 기존에는 기능적, 이성적인 측면에서 첨단 서비스를 강조하느라 상품 로고도 흰색과 파란색을 많이 사용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존 이미지를 개선해 점차 감성을 강조하는 붉은색을 사용하는 추세다.
글=김용석 기자 nex@donga.com
섹션디자인=김성훈 기자 ksh97@donga.com
차가운 기술 → 따뜻한 감성
남규택 KT 통합이미지전략담당(전무)은 “국내외 통신업체들의 브랜드 리뉴얼 사례를 보면 첨단 기술, 안전성을 상징하는 한색(寒色) 계열에서 젊고 역동적인 모습(look), 부드럽고 친근한 감성(feel)을 강하게 고객에게 각인하는 따뜻한 색 계열의 이미지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KT는 올 3월 유선통신 서비스 통합브랜드인 ‘쿡(QOOK)’을 내놓으며 빨간색을 사용했다. 손가락으로 가볍게 누른다는 의성어를 응용한 ‘쿡’은 지금껏 무거운 이미지였던 KT로서는 파격적인 브랜드였다. 붉은 색엔 기존의 낡은 이미지를 넘어 과감한 변화를 감행하는 적극적인 혁신 의지의 색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SK텔레콤도 T의 BI에서 난색 계열인 빨강과 주황색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LG텔레콤 브랜드인 ‘오즈(OZ)’의 BI도 따뜻한 분홍색을 많이 사용한다. 차가운 기술 중심의 통신업체 이미지 지향점이 따뜻한 감성과 경험을 강조하는 이미지로 빠르게 바뀐 셈이다.
하지만 색상을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LG텔레콤은 매장 내에 BI 대표색상인 분홍색으로 꾸며 놓았지만 수평 공간에만 컬러를 사용할 뿐 수직 공간에는 이를 사용하지 않는다. 절제를 하지 않고 과다하게 사용하면 강조점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 KT ‘쿡’-LGT ‘오즈’의 파격적인 변신
통신업체들은 또 부드러운 느낌을 전하는 원형 이미지를 잇달아 디자인에 채용하고 있다. 기술을 앞세우지 않고 감성적인 경험을 고객과 함께 하고 싶다는 의지 때문이다.
LG텔레콤은 ‘오즈(OZ)’ 브랜드를 내놓으면서 ‘오(O)’ 자 모양을 모든 디자인의 기본 콘셉트로 삼았다. 원형 디자인은 이 회사의 차량, 가입 신청서, 휴대전화 화면, 대리점 간판은 물론 대리점에서 고객들이 대기하는 의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문에 적용됐다. 대신 매장 천장과 테이블의 인테리어는 직선의 느낌을 강조하고 천장을 단순화함으로써 제품과 상담에 대한 주목도를 높이는 효과를 노렸다. 곡선과 직선을 대비한 것이다. 이를 통해 첨단 기술을 적용하면서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데이터 서비스를 개방하고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의미를 전달하는 데 중점을 뒀다.
O자를 활용한 LG텔레콤의 디자인 일관성은 강하다. TV 광고가 분홍색 원형 모양의 화면이 열리며 시작했다가 종료할 때도 원형으로 닫히게 할 정도다. LG텔레콤에서 브랜드 마케팅을 담당하는 한승훈 상무는 “장기적으로는 OZ의 BI 가운데 O자만 남기고 앞의 점과 뒤의 Z자는 모두 없앨 생각”이라며 “O자의 통일된 이미지만으로 LG텔레콤의 서비스를 떠올리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KT 브랜드인 쿡도 ‘Q’는 전자제품의 전원 버튼 모양에서 따왔으며 ‘O’는 콘텐츠가 온 에어(On Air)된다는 의미에서 따왔다. 그 다음 ‘O’는 세상과 가정을 잇는 쌍방향 소통 매개라는 의미에서 리프레시(refresh) 버튼 모양을 적용했고, 마지막 ‘K’는 되돌리기 버튼 모양으로 만들었다. 네 문자는 모두 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버튼 모양. 모두 친숙한 둥근 형태로 리듬감이 살아있는 디자인으로 만들었다.
○ 고객의 생활 곳곳으로 디자인 확장
브랜드 디자인은 시각적인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또 고객이 방문하는 매장의 간판에 그치지 않는다. 브랜드 확장에 가장 적극적인 것은 SK텔레콤. 이 회사는 자기만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고 디자인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전용서체인 ‘뫼비우스 체’를 개발했다. 이를 각종 광고, 문서, 사이트에 반영하고 있다. 또한 T 브랜드를 이용해 예술가들이 만든 노트, 넥타이, 책갈피 등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브랜드 숍을 개장해 고객들이 좀 더 가깝고 친숙하게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SK텔레콤은 또 전국 3000여 곳의 매장 ‘티 월드’의 직원들에게 고객이 직접 디자인한 티셔츠를 입혔고, T를 모티브로 별도 제작한 음악을 7월부터 매장에 제공해 시각뿐 아니라 청각으로 T를 경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KT도 ‘쿡’ 브랜드를 이용해 다양하고 즐거운 콘텐츠의 향연이라는 의미를 묘사한 그래픽 요소를 만든 뒤 이를 쇼핑백, 제품 포장 등에서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LG텔레콤은 O자를 강조한 브랜드 디자인을 명함, 가입서류, 홈페이지, 각종 현장 지원물은 물론 사옥 벽면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 배열해 회사를 접하는 고객들이 일관된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