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정정당당한 나무처럼

  • 입력 2009년 6월 6일 02시 56분


마음의 평정을 찾아서 박국신, 그림 제공 포털아트
마음의 평정을 찾아서 박국신, 그림 제공 포털아트
옛날 어떤 고을에 비리와 축재를 일삼는 현감(縣監)이 있었습니다. 뇌물을 받고 일을 처리하니 공명정대하지 못하고, 업무를 돌보기보다 재물을 늘리는 데 마음을 쏟으니 마을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현감이 다른 고장으로 가게 되었다는 소식이 마을에 퍼졌습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마을 사람 모두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다는 표정으로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현감이 떠날 때마다 세워주는 공덕비 문제를 놓고는 의견이 분분해졌습니다. 공덕비를 세워 칭송할 만한 구석이 전혀 없으니 세우지 말자는 주장이 우세했으나 관례를 무시할 수는 없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오랜 논의 끝에 마을 사람들은 결국 관례를 존중해 떠나는 현감의 공덕비를 세워주기로 결정했습니다. 공덕비를 세우는 날, 현감은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공덕을 어떻게 칭송했을까 궁금해 직접 제막식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공덕비에 덮인 흰 명주를 자신이 직접 걷었습니다. 그러자 거기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今日送此盜(오늘 이 도적을 보내노라). 잠시 넋을 잃었던 현감은 이방을 시켜 지필묵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비문 옆에 이런 글을 지어 붙였습니다. 明日來他盜 此盜來不盡 擧世皆爲盜(내일 또 다른 도적이 올 것이다. 이 도적은 끝없이 올 터인즉, 세상이 모두 도적인 탓이다).

아무리 옛날 일화라지만 현감의 뻔뻔스러운 글귀는 오늘 읽어도 소름이 돋습니다. 올바른 공직자의 자세가 아니라 부정부패에 대한 궤변까지 갖춘 점으로 보아 현감이 살던 당대에도 부정부패는 널리 만연해 민초의 삶을 더욱 궁핍하게 만들었을 것이라 판단됩니다. 저 현감처럼 스스로 도적임을 자처하는 공직자가 만연한 세상은 얼마나 끔찍할까요.

부정부패는 삶의 토양을 황폐하게 만들고 건전한 인간관계를 부패하게 만듭니다. 부정부패를 자행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위를 대외적인 것으로 치부하지만 이는 내부적인 붕괴를 자초해 자신을 몰락하게 만듭니다. 몰락은 짧은 동안 구현될 수 있고 오랜 세월이 필요할 경우도 있습니다. 장자의 말처럼 아침에 돋아나는 버섯은 그믐과 초하루를 모르고 매미는 봄과 가을을 모릅니다. 그러니 목전의 일에 눈이 어두워 저지르는 인간의 부정부패가 얼마나 짧고 좁고 궁핍한 생각의 소산일까요.

부정부패는 세상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위배하는 행위입니다. 인생의 요체가 생명활동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자연을 위배하는 일이 가장 심각한 과오가 됩니다. 500년을 봄으로 삼고 500년을 가을로 사는 나무, 8000년을 봄으로 삼고 8000년을 가을로 사는 나무의 장구한 삶은 오직 자연스러움만으로 더할 나위 없이 정정당당합니다. 자연스러움보다 더 좋은 게 없고 그것보다 더 오래 가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떳떳하게 존재하는 모습. 그것이 정정당당입니다.

작가 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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