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신뢰로 뭉친다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죠”

  • 입력 2009년 4월 24일 03시 01분


조계종 덕숭총림 4대 방장 설정 스님

봄기운이 무르익은 덕숭산 기슭의 충남 예산 수덕사.

최근 산중총회에서 덕숭총림(德崇叢林) 4대 방장으로 추대된 설정 스님(67)을 부처님 오신 날(5월 2일)을 앞두고 23일 수덕사 내 선원인 정혜사에서 만났다. 총림은 선원과 율원, 강원을 갖춘 곳으로 국내에는 수덕사를 비롯해 해인사(해인총림) 통도사(영축총림) 송광사(조계총림) 백양사(고불총림) 등 5개 총림이 있다.

설정 스님은 근대 불교사에서 선풍을 진작한 경허 만공 스님의 선맥을 계승한 혜암 벽초 원담 스님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잇고 있다. 스님은 1955년 수덕사에서 원담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뒤 해인사 강원과 범어사 봉암사 등 선원에서 수행했다. 수덕사 주지와 중앙종회 의장을 지냈고 30대에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 원예학과를 졸업하기도 했다.

평소 공평무사한 맑은 목소리로 명성이 높은 스님은 인사말을 부탁하자 대뜸 최근 잇따른 정치인의 구속과 전직 대통령을 둘러싼 비리를 비판했다. “요즘 정치하는 분들을 보면 믿고 따라야 할지 걱정스럽습니다. (대통령) 자신과 측근들로 인해 국민들에게 큰 실망과 좌절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정치사는 얼마나 저런 악순환을 해야 할지 안타깝습니다.”

스님은 방장으로 추대된 것과 관련해 “덕숭산은 근대 선의 중흥기를 이끌었고 위대한 선사들이 사부대중과 국민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며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스님은 그 해법으로 수행의 정신을 살린 불교 본원의 모습과 승격(僧格)을 강조했다.

“스님이 삭발하고 출가한 것은 잘 먹거나 잘 입고, 이익이나 명예를 챙기려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무상한 진리를 가슴에 담고 그 진리를 중생과 나누기 위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생을 고통에서 건져주겠다는 원력을 가져야 합니다.”

스님은 10월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와 관련해서도 일침을 놓았다. 종단 개혁에 앞장서고 종회의장을 지내면서 총무원장 후보로 거론돼온 스님은 1998년 췌장암 진단을 받은 뒤 수행에 전념해 왔다.

“부처님을 믿는 사람은 인과를 믿고, 그러면 나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몸과 마음과 입을 잘 다스려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불행하게 할 수 있습니다. 1998년 병이 왔을 때 스스로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끝없는 참회와 수행을 통해 나쁜 업들이 떨어지도록 노력했습니다.”

스님은 최근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한 조언도 했다.

“무신불립(無信不立), 신뢰가 없으면 설 수 없다고 했습니다. 신의 신뢰 신망 신탁할 수 있어야 힘이 생기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게 가능하면 우리 사회 경제가 어려워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스님은 지금도 매년 봄이면 주석하고 있는 정혜사 인근의 밭에 각종 채소를 심고 농사를 지으며 선농겸수(禪農兼修)의 원칙을 지키고 있다.

“올해도 도라지와 상추 등 온갖 채소를 심었습니다. 그래서 스님들이 농사며 일이 많다고 ‘정혜건설회사’라고 합니다.(웃음) 농사는 잡념을 버리게 하고 수행에 큰 도움을 줍니다. 자급자족하는 게 맞아요. 산중에 있는 백만의 적은 물리치기 쉬워도 심중에 있는 한 줌의 적은 물리치기 어렵습니다. 내 마음속의 도적만 잘 관리할 수 있다면 수행을 잘할 수 있습니다.”

예산=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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