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주,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연주

  • 입력 2009년 4월 21일 08시 54분


때론 향기롭게 때론 폭풍처럼 관객들과 함께한 ‘위대한 울림’

활을 잡고, 바이올린을 턱밑에 끼우는 순간 분위기가 달라졌다. 팽팽한 현의 긴장감. 떨림이 관중석을 압도한다. 1번 3악장 알레그로 비바체의 휘몰이가 한 바탕 지나가고 나서야 관객들은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연주가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관객을 향해 웃고 있었다.

19일 금호아트홀에서 있었던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독주회는 우리나라 음악사의 ‘위대한 도전’이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10곡)을 오후와 저녁 두 차례에 나누어 하루에 완주하는 이 기획은, 당연하지만 국내 최초의 도전이자 실험이었다.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오른 이성주는 이날 ‘소리도 얼굴처럼 예쁠 것’이란 망상을 초반부터 으깨 부수었다. 알레그로는 거침없이 일직선으로 달려 나갔고, 아다지오에서는 더 없이 무겁고 음울한 울림을 들려줬다. 5번 ‘봄’이 이렇게 향기로운 곡이었던가. 음악이 향기가 되어 내 몸에 스미는 것만 같다.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코를 벌름일 것 같다.

대장정은 9번 ‘크로이처’로 마침표를 찍었다. 크로이처를 화려하게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는 많다. 심지어 요염하게 연주하는 사람조차 있다. 하지만 이성주는 눈발을 헤치고 달리는 폭주기관차 같은 광기를 들려줬다.

완주 후 이성주 교수는 땀 배인 미소를 지으며 무대 위에서 말했다.

“저와 함께 긴 하루 동안 도전하신 여러분 모두를 위해, 박수!”

이날, 베토벤이 지닌 10개의 얼굴을 보았다. 학창시절 음악실 벽에 걸려 있던 치통 앓는 듯한 베토벤의 얼굴만을 기억하고 있던 우리들은 얼마나 무지했던가. 그 깨달음을 선물해 준, 보랏빛 바이올린의 여신을 위해 박수를 되돌려 보낸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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