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필에 묻어나는 작가의 체취

  • 입력 2009년 4월 16일 02시 58분


17일 개막하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의 ‘창조와 발상-초고와 육필 원고전’에 선보이는 작가들의 육필 원고. 박경리 선생의 소설 ‘나비야 청산 가자’ 원고 일부(왼쪽)와 시인이자 무용평론가였던 김영태 씨의 원고. 사진 제공 영인문학관
17일 개막하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의 ‘창조와 발상-초고와 육필 원고전’에 선보이는 작가들의 육필 원고. 박경리 선생의 소설 ‘나비야 청산 가자’ 원고 일부(왼쪽)와 시인이자 무용평론가였던 김영태 씨의 원고. 사진 제공 영인문학관
영인문학관 김동리 - 황순원 등 70여 명 원고-초고 기획전

“홍당무와 오이/한 접시/갯벌 같은 스산한 식탁/홍당무와 오이 옆에 따로 떨어진 내 머리가/나둥굴고 있다/떨어진 머리를 산골서 온 아이가/제자리에 붙여 놓는다/제라늄 같은/흰 꽃도/손톱으로 성에를 긁으면/만들 수 있다….”

시인이자 무용평론가였던 김영태 시인(1936∼2007)의 미발표 시 ‘적요’. 17일부터 열리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의 기획전 ‘창조와 발상-초고와 육필원고전’을 통해 처음 공개되는 이 시는 문학평론가 강인숙 관장이 기획전을 위해 작가들의 육필원고를 정리하던 중 발견한 것이다. 김 시인은 이제하 작가와 함께 문학과지성사 시집의 인물 컷을 도맡아 그렸고 ‘남몰래 흐르는 눈물’ 등 17권의 시집과 6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이 시에 대해 강 관장은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야 했던 시인의 생활을 그린 것으로 1970년대 말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며 “김 선생은 암으로 돌아가시기 2년 전부터 조금씩 원고를 정리해 정기적으로 보내왔다. 작가로서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원고정리였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소중한 자료들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에서 김 시인의 미발표 육필원고를 비롯해 김동리, 황순원, 이청준, 박완서, 김훈, 이문열 등 작고 및 생존 작가 70여 명의 초고·육필원고를 선보인다. 강 관장은 남편인 문학평론가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가 문학사상의 주간이었던 1970년대 초부터 작가들의 육필원고와 소장품들을 모아왔다.

초기에는 문학사상사에서 나오는 자료들을 모았고 1980년대 이후에는 작가와 유가족으로부터 기증을 받았다. ‘유예’ ‘증인’ 등을 쓴 소설가 오상원 씨(1930∼1985)의 육필원고 등도 유실을 걱정한 고인의 부인에게서 기증받은 것들이다.

특히 이번 기획전에서는 원고뿐 아니라 초고를 함께 전시해 작품을 완성해 가는 과정을 비교해 볼 수 있게 했다. 조정래 작가의 ‘오, 하느님’은 취재 단계의 수첩과 구상 메모, 초고, 완성된 원고를 모두 전시했다. 붉은색 교정 기호가 빼곡한 문학평론가 김화영 교수의 ‘까뮈연구’ 육필원고, 지난해 타계한 박경리 작가의 ‘나비야 청산 가자’ 육필원고 일부, 김승옥 작가의 대표작 ‘무진기행’의 육필원고도 만날 수 있다. 소설가 김동리(1913∼1995), 김상옥 시인(1920∼2004)의 방을 재현해 놓은 ‘작가의 방’도 마련했다.

전시는 다음 달 31일까지 계속된다. 전시 기간에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는 시인 오탁번 고은 씨, 소설가 박범신 권지예 씨 등의 문학강연회가 열린다. 02-379-3182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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