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사환이 된 초서, 천태만상 인간상 그리다

  • 입력 2009년 4월 4일 02시 55분


◇ 창조자들/폴 존슨 지음·이창신 옮김/496쪽·1만9000원·황금가지

인간은 누구나 창조성을 갖고 태어나지만 드러나는 정도는 차이가 있다. 일상에서 재밌는 농담을 잘하는 사람도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도 있다. 역사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문학과 예술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이 남다른 창조성을 발현할 수 있었던 이유를 찾아 나선다.

‘영문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제프리 초서(1342?∼1400)의 창조성은 인간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했다. 중세시대 영국의 교회와 국가, 부와 빈곤, 도시와 마을, 일상의 순수와 미덕 등을 담은 ‘캔터베리 이야기’를 비롯해 그의 작품들은 인간행동의 천태만상을 표현한 희극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런던에서 성공한 포도주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은 것도 그의 재능을 키운 요인. 그의 아버지는 10대가 된 아들을 귀족 가문의 사환으로 들여보내 상류층 문화를 배우고 인맥을 쌓도록 했다. 이 경험은 그가 일반인뿐 아니라 상류층 사교계까지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독일 르네상스 회화의 완성자’로 불리는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 그의 창조성은 타고난 열정과 성실함에 가족의 뒷바라지가 더해지면서 나타났다. 그는 펜을 쥘 수만 있으면 곧 그림을 그렸다. 그가 13세에 그린 자화상은 놀라운 완성도를 보여줬을 정도로 어려서부터 틈만 나면 그렸다. 저자는 그림에 몰두한 그를 가리켜 ‘진한 잉크 냄새’라고 표현한다. 그는 여행 중 별다른 도구 없이 그릴 수 있는 수채화를 즐겨 그렸다. 그의 수채화는 북유럽(알프스 이북 지역) 최초의 진경 수채화였다. 도안 전문 화가가 되고 싶다는 아들을 지역 최고의 목판화가에게 보내 공부를 시킨 아버지의 지원도 있었다. 뒤러는 바로 이 목판화로 ‘북유럽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명성을 얻었다.

일본의 풍경화를 창조했다는 평가를 받는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齋·1760∼1849)에게는 늘 새로운 실험을 하는 도전정신이 충만했다. 그는 1804년 에도(현 도쿄)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멀뚱멀뚱 쳐다보는 가운데 350m² 크기의 종이 위를 물감을 묻힌 빗자루를 들고 다니며 달마대사의 그림을 그려 ‘기진(奇人)’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다른 화가들과 달리 서양화법을 적극 받아들였고 대중의 기호와 입맛에 맞춰 예순 중반까지 춘화(春畵)를 판화로 제작했다. 뒤러의 ‘코뿔소’와 렘브란트의 ‘코끼리’, 뭉크의 ‘절규’와 더불어 회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이미지로 꼽히는 목판화 ‘후가쿠(富嶽) 36경’ 시리즈의 하나인 ‘가나가와 앞바다의 거대한 파도’(1830년대 작품)는 이런 과정에서 탄생했다.

런던 국회의사당 ‘빅벤’의 재건에 기여했던 ‘고딕양식의 건축가’ 퓨진(1812∼1852)에게는 화가이자 삽화가, 디자이너, 미술교사였던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를 만나러 온 화가와 출판업자, 판화가, 작가들로 북적이는 집에서 자란 퓨진은 자연스레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됐다. 세 살 때 소묘를 시작한 그는 뒤러처럼 평생 연필과 붓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여름이면 아버지와 함께 유럽을 여행하며 교회와 고딕건축물을 그림에 담았다. 그는 건물뿐 아니라 그 안에 있는 것들까지 세세하게 그렸고 관심 분야도 넓어 무대의상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10대 때부터 직접 삽화를 그려 넣은 미술서적을 출판했고 17세 때 회사를 차려 가구 디자인 사업을 할 정도였다. 그는 이런 단계를 거쳐 버밍엄의 세인트채드대성당(1839∼1841) 건축을 시작으로 영국 아일랜드 등의 성당 수십 곳을 설계했다. 그는 고딕을 표현한 최고의 건축가라는 명성을 얻었다.

책에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오만과 편견’의 작가 제인 오스틴, 빅토르 위고, 마크 트웨인, T S 엘리엇,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크리스티앙 디오르, 파블로 피카소, 월트 디즈니 등 위대한 문학가와 예술가 17명이 창조성을 이끌어낸 과정과 배경에 대한 얘기를 담았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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