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말하라, 의문의 죽음 그 진실을…

  • 입력 2009년 2월 28일 03시 03분


◇라이어/존 하트 지음·나중길 옮김/592쪽·1만3800원·노블마인

거액 유산 남기고 살해된 한 남자

아들과 딸이 용의선상에 오르고…

과연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까

변호사인 워크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 선고를 받은 의뢰인에게 항소할 권리에 대해 설명해주고 교도소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의뢰인은 리모컨을 차지하려고 말다툼을 벌이다 실수로 동생을 총으로 쏜 전과 3범이다. 술에 만취한 채 총과 리모컨을 들고 나와 울부짖는 그를 이웃이 신고한 만큼 상황은 불리했다. 눈물을 흘리는 스물세 살 의뢰인의 삶은 이미 파국이었다. 감정적 소모로 인한 피로와 변호사 직업에 대한 회의가 복잡하게 뒤섞여 있을 때, 워크는 아버지가 죽은 채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변호사 출신 작가 존 하트의 데뷔작인 이 작품은 아버지의 뜻밖의 죽음으로 살인용의자로 몰리게 된 워크가 진실을 밝혀가는 법정소설이다. 작가는 형사 사건 변호사로 오래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4000만 달러의 유산을 남기고 총에 맞아 살해된 남자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로 추적해 간다.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는 소식에 워크의 여동생 진은 놀라서 울음을 터뜨리기는커녕 ‘아버지가 지옥으로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빈민가 출신으로 자수성가한 변호사였던 아버지 에즈라는 가족들에게 버겁고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사회적으로는 유능한 변호사였지만, 워크에게 변호사 일을 물려받도록 강요했고 결혼도 아들의 뜻과 상관없이 바버라와 하도록 강요했다. 더욱이 아버지는 1년 전 딸 진과 다투다 워크의 어머니를 계단에서 떨어져 죽게 했고, 이 사건 이후 가족과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소설에서는 용의선상에 오르는 이들이 차례대로 등장한다. 워크는 아버지를 증오하는 진이 용의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찰은 유산 분배에 불만을 품은 워크를 용의자로 올린다. 유언장의 사본이 워크의 집에서 나오자 경찰은 그것을 결정적인 증거로 몰아붙인다. 범죄 용의자들을 변호해왔던 워크는 졸지에 자신이 용의자로 몰려 체포된다.

‘노스캐롤라이나의 다른 무명의 죄수들처럼 이제 나는 내 세상이 되어버린 이 비좁은 공간을 확장시킬 수 있다는 듯이 유리창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밤이 깊어지자 한 가지 생각이 분명해졌다. 내가 이곳을 벗어나게 된다면 선택의 자유를 당연시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가로 2.4m, 세로 1.8m의 좁은 감방에 갇혀서야 그는 비로소 지금까지 자신의 삶이 두려움, 기대, 타인의 의견이라는 쇠창살에 갇혀 있었다는 점을 깨닫는다. 아내 바버라와의 허울뿐인 관계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삶에 염증을 느낀 그는 보석으로 풀려난 뒤 본격적으로 사건의 실상을 조사해간다. 진의 동성커플인 알렉스가 14세 때 아버지를 죽여 치료감호소에 갇힌 경력이 있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하지만 워크가 사건의 실체를 향해 갈수록 드러나지 않았던 예상 밖의 반전이 나온다.

살인사건의 전모를 밝히기 위한 빠른 전개, 진실과 더불어 서서히 드러나는 가족들의 오랜 상처, 불안하고 공허한 삶에 놓인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가 어우러졌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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