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아쉬울 것 없노라고 했지만 우린 아쉬움에 사무칩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2월 21일 02시 59분



“영원한 생명을 주소서” 정진석 추기경(왼쪽에서 두 번째)이 20일 오전 10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김수환 추기경 장례미사에서 김 추기경의 관 주위를 돌며 분향(향로로 연기를 내는 것)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영원한 생명을 주소서” 정진석 추기경(왼쪽에서 두 번째)이 20일 오전 10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김수환 추기경 장례미사에서 김 추기경의 관 주위를 돌며 분향(향로로 연기를 내는 것)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장례미사에서 안장까지

“정말 많은 시련 우여곡절 겪었지만 그래도 난 행복한 인생”

金추기경 육성 동영상에 명동성당밖 추모객들 ‘눈물바다’

운구차 가는길 곳곳 배웅행렬… 용인묘역도 2000여명 몰려

“부활이요 생명” 성경구절 울려퍼지는 속 마지막 안식처로


김수환 추기경이 서울 명동성당을 떠나 영원의 삶으로 들어가는 20일 새벽부터 진눈깨비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전날 다소 풀렸던 기온이 떨어지고, 옷깃을 파고드는 칼바람 때문에 장례 기간 5일 가운데 체감온도가 가장 낮았지만 명동성당에는 해가 뜨기 전부터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 먼발치에서라도 보고 싶어서

이날은 장례미사 준비 때문에 명동성당 대성전에 들어갈 수 없어 시민들은 명동성당 앞마당에 하나둘씩 모였다. 손에 묵주를 꼭 쥔 채 기도를 하고 있던 조이영 씨(51)는 “새벽 3시 반에 도착했다”며 “추기경께서 이미 천국으로 가셨겠지만 하늘로 가셔서도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례위원회는 대성전이 1500석에 불과한 점을 감안해 성당 앞마당에 2대, 인근 가톨릭회관 앞마당에 2대의 대형 스크린을 설치했다.

“꼭 안에 들어가서 모셔야만 미사인가요. 이렇게 먼발치에서라도 볼 수 있으면 된 거죠. 그냥 그분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고 싶을 뿐이에요.”

멀티비전 앞자리에 돗자리를 깔고 앉은 박상란 씨(44)는 잠시 서 있기도 힘든 추위였지만 딸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오전 10시 추기경을 위한 장례미사가 시작됐다.

“내 나이 여든 다섯.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자연히 과거를 되돌아보게 된다…나는 정말 많은 시련과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에 비해 여러 의미로 행복한 인생을 살아왔다.”

미사가 끝나갈 무렵 추기경의 육성을 담은 동영상이 상영되자 모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젊은 여성도, 백발의 노신사도, 중년의 남성 등 성별과 나이에 관계없이 곳곳에서 눈물을 훔치는 시민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오전 11시 55분 미사가 끝난 뒤 추기경이 잠든 삼나무 관이 성당 1층을 빠져나왔다. 구름같이 몰려온 신자들의 얼굴에서는 참으려, 참으려 노력해도 터져 나오는 울음이 순식간에 번지기 시작했다. 낮 12시, 33번의 종소리를 뒤로한 채 운구차는 명동성당을 빠져나갔다.

○ 이제 정말 보내드려야 하나

명동성당을 빠져나온 운구차는 한남대로를 건너 경부고속도로, 양재 나들목을 지나 수원요금소를 빠져나와 경기 용인시 천주교 서울대교구 성직자묘역에 도착했다.

시민들은 운구차가 지나는 골목골목마다 늘어서 추기경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했다. 운구 행렬은 더 빠른 길이 있었지만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고 신호등이 적은 길로 돌아갔다. 운구차가 용인시 수지구의 한 대형마트 앞을 지날 때는 200여 명이 60m가량 줄지어 서 추기경을 배웅했다.

묘역에 도착한 오후 1시 15분에는 이미 2000여 명의 시민이 차가운 바람에도 불구하고 추기경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대교구에서 가장 젊은 8명의 사제가 추기경의 관을 언덕에서 묘지까지 60여 m 옮겼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김혜경 씨(49)는 “투명 유리관을 통해 추기경님을 볼 때만 해도 우리 곁에 있는 것 같았는데 검은 차에 실려 오는 걸 보니 이젠 정말 보내드려야 할 때인 것 같다”며 눈물을 흘렸다.

추기경의 마지막 잠자리는 2평이 채 되지 않았다. 주교단과 사제단, 유가족이 차례로 성수를 뿌리는 것을 시작으로 삼나무 관 위로 흙이 덮이기 시작했다.

흙의 양이 늘어날수록 2000여 명의 시민이 흐느끼는 소리는 점점 커졌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요한복음 11장 25절)라는 구절이 울려 퍼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하관예절은 끝이 났다.

하지만 해가 진 뒤에도 신자와 시민들의 발길은 계속됐다.

서연옥 씨(55)는 아들 김성욱 씨(26)와 함께 어둠이 짙게 깔린 오후 6시 40분 묘역을 찾았다. 서 씨는 “늦게라도 떠나시는 추기경을 꼭 만나 뵙고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며 추기경의 묘지에 꽃을 바친 뒤 성호를 그었다.

이들 모자가 어둠을 헤치고 묘역을 빠져나가는 길, 추기경의 묘지에는 꽃다발 5개가 남아 있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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