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故김형곤 씨 친형 연극배우 데뷔

  • 입력 2009년 1월 30일 03시 01분


서울 대학로 라이프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수요일의 연인들’의 주역 유부남 존 역으로 분장한 개그맨 고 김형곤 씨의 형 형준 씨(오른쪽). 사진 제공 라이프씨어터
서울 대학로 라이프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수요일의 연인들’의 주역 유부남 존 역으로 분장한 개그맨 고 김형곤 씨의 형 형준 씨(오른쪽). 사진 제공 라이프씨어터
삼성임원 출신 김형준 씨 ‘수요일의…’ 주역 맡아 ‘제2인생’

대기업 임원 출신이 53세의 나이에 연극배우로 변신했다.

18일까지 삼성전자 국내영업사업부에서 인사담당 상무로 재직한 김형준 씨는 11일부터 대학로 라이프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수요일의 연인들’의 주역으로 데뷔했다. 그는 개그맨 고(故) 김형곤 씨의 형이다.

‘수요일의 연인들’은 부유한 유부남 존과 내연녀 앨렌, 미혼남 캐스의 삼각관계를 코믹 터치로 그린 작품. 김 씨는 성우 장광 씨와 존 역을 번갈아 맡고 있다.

“친구인 허정 극단 라이프씨어터 대표가 대학시절부터 저를 무대에 세우려 했는데 제가 삼성전자에 입사하면서 무산됐죠. 지난해 말 퇴직이 결정됐을 때 허 대표가 배역을 제안해 그지없이 기쁘고 고마웠습니다. 쉰이 넘은 나이에도 새로운 일에 도전할 기회를 줬으니까요.”

그는 2월 초 출범할 사업체(인력파견전문업체 윈윈파트너스) 준비로 바빴지만 새 인생을 시작하면서 자신과 지인들에게 깜짝 선물을 안겨주자는 생각에 출연을 흔쾌히 수락했다. 공대 출신으로 무대와 담을 쌓고 살았던 그로선 동생(김형곤 씨)의 이름에 누를 끼칠까 부담도 컸지만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대중 앞에 선다는 두려움이 이렇게 클 줄 몰랐습니다. 첫 공연을 하루 앞두고는 도저히 무대에 설 수 없을 것 같아 술을 마시고 ‘왜 캐스팅했느냐’며 허 대표에게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죠.”

중저음의 목소리가 매력적인 그는 큰 실수 없이 공연을 마쳤을 때 성취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야, 부럽다”며 악수를 건네던 친구들과 옛 직장동료들, 아버지의 연기 도전을 지지해주던 두 아들의 박수에 젊은 여배우와의 키스신에 질겁했던 아내도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직장을 떠나든 남아 있든 제2의 인생을 계획하는 제 또래들이 지금도 늦지 않았고 충분히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격려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말까지 무대에 서고 한동안 사업에 충실할 계획이라는 그는 앞으로도 아마추어 배우로 계속 활동할 것이라고 한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