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대담]유종호 예술원 회원 - 정옥자 국사편찬위원장

  • 입력 2009년 1월 1일 00시 11분


“이 고생이 옛얘기가 될 날 올것”… “우보만리〈牛步萬里:소 걸음으로 만리를 간다〉의 정신 되새겨 볼 때”

《새 정부 출범이라는 희망의 첫걸음으로 시작한 2008년은 유난히 그림자가 짙은 한 해였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경제위기,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역사교과서 수정을 둘러싼 갈등, 해머까지 등장한 국회의 파행…. 희망을 주기보다 희망을 빼앗는 말들이 이어졌다. 새해에도 선뜻 낙관하기 어려울 정도로 곳곳에 적신호가 켜져 있다. 이럴 때 우리는 무엇을 지표로 나아가야 할까. 지난해 12월 29일 문학평론가인 유종호(73) 예술원 회원과 정옥자(66) 국사편찬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신년 대담을 가졌다. 문학비평사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유 예술원 회원은 문화를 통해 현대사를 냉철하게 바라보며 사라져가는 인문주의적 가치의 소중함을 일깨워왔다. 69세에 첫 시집을 낸 ‘영원한 청년’이기도 하다. 정 위원장에게는 ‘첫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조선 후기 문화사를 재조명한 역사학자인 그는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와 규장각 관장을 지낸 데 이어 지난해 3월 국사편찬위원장에 임명됐다.》

▽유종호=역사나 인생이나 그 역정이 비슷해 꼭 평탄하게 가는 것만은 아닙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데 요즘이 가파른 오르막이죠. 하지만 이 고비를 넘기면 내리막이 나오고 다시 탄탄대로가 나올 겁니다.

▽정옥자=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보며 우리가 너무 경제논리로만 세상을 본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계기로 삶의 패러다임을 바꿔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침 내년이 소띠 해인데 ‘우공이산(愚公移山) 우보만리(牛步萬里)’의 정신을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조금씩 흙을 날라 능히 산을 옮기고, 소의 느린 걸음으로도 만 리를 갈 수 있습니다.

▽유=지금도 6·25전쟁 때 피란 가던 생각이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어른들이 “이 고생을 옛 얘기로 할 날이 꼭 올 것”이란 말을 하곤 했는데 살아보니 틀린 말이 아니더군요. 호메로스에서도 오디세우스가 부하들에게 ‘살아생전 언젠가 이 고초 기억하리라’고 격려하는 대목이 나와요. 전통의 지혜는 동서양에 관계없이 이런 위로와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정=선생님, 6·25전쟁 때 몇 살이셨죠.

▽유=열여섯이었죠.

▽정=전 아홉 살이었어요. 근데 중년에 겪은 일은 기억 못해도 그때 일은 지금까지 생생해요. 전쟁이라는 집단적 고난이 국가는 물론이고 개인의 일생에서 함께하고 있는 거죠. 궁즉익견(窮卽益堅), 역경 속에서 사람이 뜻을 세우면 그 뜻은 더 단단해집니다. 우리 역사도 고통 속에서 단련됐습니다. 조선시대만 봐도 임진란 뒤 30년이 안 돼 병자호란이 일어나 망국의 위기를 겪지만 영·정조의 화려한 문예부흥기를 이룩합니다.

▽유=요즘 국회 상황을 보면 우리가 아직도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것이 많다는 반성이 불가피합니다. 민의를 논하는 국회가 아니라 전쟁터예요.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민주주의의 요체는 타협이라고 했어요. 상인들이 흥정할 때 각각 50원과 30원을 부르다가 40원으로 가격을 정하는 것처럼 타협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거지요. 민주주의의 발상지인 고대 아테네와 근대 영국이 무역이 왕성한 교역 국가라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명분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선 타협이 야합과 변절로 폄훼되기 쉬워요. 무조건 큰 목소리가 투사로 대접받는 풍토에서는 민주주의의 시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습니다.

▽정=지금 우리는 투쟁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누구를 이기고 거꾸러뜨려야 살아남는다는 것은 동양적 세계관이 아닙니다. 유교는 신분질서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 그 기본적인 정신은 공생의 논리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대동사회가 이상적 세계관입니다. 서구의 대립적 세계관이 유입되고 일제강점기 망국 백성으로 살았고 6·25전쟁까지 겪고 나니 앞뒤가 꽉 막히게 된 거죠. 조선시대 붕당정치는 역기능도 있었지만 이상세계를 만들기 위해 상호 경쟁을 하면서 부정부패를 막는 순기능이 있었죠. 지금은 그 순기능이 사라진 붕당정치의 마지막 폐단, 말폐(末弊)만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유=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과 독일은 적대 국가였죠. 하지만 영국 처칠은 독일 로멜 장군이 죽었을 때 의회 연설에서 최대한의 찬사를 바쳤습니다. 단순히 로멜이 히틀러에 반대했다는 것뿐 아니라 군인으로서의 품격 때문이죠. 우리에겐 반대 입장에 있는 이에 대한 경의가 전혀 없어요. 강자는 다수의 힘을 빌리고, 약자는 군중을 동원할 잔꾀만 부린다면 민주주의가 설 곳은 없습니다. 대학의 존립 자체를 위험하게 하는 극렬 학생들에게 자신들이 앉아 있는 나뭇가지를 베면 안 된다고 한 철학자 마르쿠제의 충고는 귀담아들을 만하죠.

오랜 기간 대학에서 후학들을 가르쳐온 두 사람은 교육 문제가 화제에 오르자 깊은 공감을 표시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정 위원장은 자녀 교육에 얽힌 개인사를 밝히면서 교육이 위기라고 말했다. 유 예술원 회원은 “자본의 본원적 축적이라는 말이 있듯 젊을 때는 지적 자본의 본원적 축적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정=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에는 교육의 책임이 큽니다. 전통시대에는 과거제도로 상징되는 교육이 출세의 방편이 됐지만 동시에 인성교육이 중시됐습니다. 요즘은 인성교육은 빠지고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도구의 기능만 남게 됐습니다. 대학에 있을 때 어느 날 강의실에서 자기가 덮은 이불을 개고 온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손을 든 학생이 몇 안 되더군요. 그때부터 강의하면서 간단한 예절 교육도 같이 했습니다. 요즘 학생들을 보고 있자면 입학 때부터 취업 공부에 매달려 한 사람의 인격체가 완성되기도 전에 사회라는 거대한 벽의 벽돌 한 장이 되는 데 그쳐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유=대학은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을 양성하는 한편 민주시민의 자질과 품성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인구 대비 대학생 수가 극히 많은 편에 속하지만 학문의 수준이나 지적 풍토는 이에 못 미치고 있습니다. 전통적 의미의 가정교육은 붕괴되고 이를 대체할 인성교육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죠. 부모도 아이가 공부만 잘하면 아무런 문제도 삼지 않죠. 21세기가 기술문명이 발전한 첨단시대라고 하지만 사회의 질은 전보다 비속화(卑俗化)된 것이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1940년대 전후의 미국 영화를 보면 등장인물이 상스러운 욕설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최근엔 대통령으로 나오는 인물조차 마구 욕설을 해대요. 그만큼 문화가 천격이 되어가고 있어요.

▽정=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리면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맡겨둔 편입니다. 아들과 딸이 처음에는 대학을 가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모두 진학했어요. 고교 졸업 뒤 자기가 원하는 일을 찾아 10년 동안 직장을 다니던 딸은 결국 백기를 들었어요. 아무리 경력이 뛰어나도 대학 졸업자보다 월급을 적게 받고, 우리 사회는 둘만 만나면 출신 학교를 따지니까요. 대다수의 길에서 조금 다른 선택을 하거나 조금만 일탈하면 낙오자로 낙인을 찍는 게 문제입니다.

▽유=자녀분들은 인생의 ‘패자부활전’에서 이긴 것 아닐까요. 불행하게도 실제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기회가 많은 편이 아니죠. 젊은 세대가 어려운 것은 알지만 그래도 난 조언하겠습니다. 젊을 때는 에너지나 정신 능력이 아주 활발하고 모든 것이 왕성할 때입니다. 그 정신과 에너지를 활용해 취업은 물론이고 교양을 쌓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마라, 감히 이렇게 말하려고 합니다. 교양은 딱딱한 것이 아니고 사실은 세상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이에요. 젊을 때 그런 능력을 길러야지요.

▽정=지하철을 공짜로 타기 시작하면 노후가 시작된다는 농담을 친구들끼리 주고받습니다. 20대뿐 아니라 노후를 맞기 20여 년 전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여생(餘生)은 남은 생이 아니라 ‘아름다울 여(麗)’, 여생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아름답고 거침도 없고 두려움 없이 살아야죠. 그러려면 건널목인 젊은 시절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정년을 맞고 마음을 정리하면서 불필요한 것은 모두 버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평생 학자로 살았으니 책은 못 버리고 고향인 강원 춘천에 서실을 만들어 1년 가까이 살았는데 홀가분하고 좋았어요. 그러다 국사편찬위원회로 왔는데 마음을 비우니 두려운 것도, 아까운 것도 없더군요. 아니,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지금 세상에 사약을 받거나 유배를 가는 것도 아닌데….(웃음)

▽유=전문가가 계시니 역사 교과서 문제가 떠오릅니다. 근대국가에서 역사와 지리를 가르치는 것은 국민의 자부심을 기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미화가 아니라면 국민으로서 최소한의 자부심을 키우는 쪽으로 가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정=저도 대한민국의 성취를 높이 평가합니다. 우리는 짧은 시간에 전쟁 극복도 힘든 상황에서 먹고사는 것과 인권 문제도 함께 해결하는 뛰어난 성과를 거뒀습니다. 하지만 현대사 문제는 미시적이 아니라 역사적 맥락에서 판단해야 합니다. 역대 정권마다 빛과 그림자, 공과(功過)가 있으니 일방적으로 미화하거나 폄훼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유=너무 단순한 말 같지만 세상이 힘들면 힘들수록 바르게 사는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세상을 살아보니 사람이 착하고 바르다고 해서 꼭 잘된다는 보장은 없더군요. 그런데 고약하고 모진 사람의 끝이 좋지 않은 것은 분명한 것 같아요.(웃음)

▽정=이제 인과응보가 당대에 온다죠. 돌이켜보니 남들이 뒤처졌다며 걱정해준 전업 주부 10년 생활도 아주 소중했고 그 시간이 나중 역사 공부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최선을 다했다면 때를 기다려야죠.

두 사람은 지난해 2월 불에 타 무너져 내린 숭례문 사건에 깊은 충격을 표시하면서도 희망의 싹도 발견했다고 강조했다.

“평소 무심코 그 앞을 지나쳤지만 숭례문의 진정한 가치는 ‘국보 1호’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숨을 쉬면서 살아온 생명의 존재라는 겁니다. 그 생명이 불타고 위태롭게 된 겁니다. 우리 사회에 대한 경고겠죠.”(유 예술원 회원)

“숭례문 붕괴를 보면서 갑자기 숨이 막혀 한동안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슬퍼하고 애통해 하는 것을 보면서 희망을 찾았습니다. 국가가 정말 제 역할을 못했다는 아쉬움도 들었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국민의 눈물과 마음속에 담겨 있던 염원을 담아 최선을 다해 복원해 주길 바랍니다.”(정 위원장)

정리=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사진=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유종호 예술원 회원:

△1935년 충북 충주 출생 △1957년 서울대 영문과 졸업 △1973년 미국 뉴욕주립대 석사 △1991년 서강대 영문학 박사 △1977∼1996년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 △1996∼2006년 연세대 문과대 석좌교수 △1998∼ 예술원 회원

△저서 ‘동시대의 시와 진실’ ‘문학이란 무엇인가’ ‘시란 무엇인가’ ‘문학의 즐거움’ ‘서정적 진실을 찾아서’ ‘다시 읽는 한국시인’ ‘나의 해방 전후’

:정옥자 국사편찬위원장:

△1942년 강원 춘천 출생 △1965년 서울대 사학과 졸업 △1977년 서울대 대학원 석사 △1988년 서울대 대학원 박사 △1981∼2007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1999∼2003년 서울대 규장각 관장 △2008년 국사편찬위원장

△저서 ‘조선후기 문화운동사’ ‘조선후기 지성사’ ‘조선후기 역사의 이해’ ‘역사 에세이’ ‘정조의 문예사상과 규장각’ ‘역사에서 희망읽기’ ‘조선시대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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