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소통]덕수궁미술관 ‘한국근대미술걸작전’

  • 입력 2008년 12월 23일 03시 07분


격동의 역사 헤쳐온 한국인

‘삶과 꿈의 원동력’ 들춰보기

《떠도는 공기 속에 오래된 세월의 숨결이 녹아 있다.

우람한 돌기둥과 고풍스러운 전시공간에서 만난 근대의 시간과 풍경을 담은 작품들. 물끄러미 바라보며, 무한 질주해온 삶의 속도를 멈추고 잠시나마 숨을 고른다.》

억지로는 만들 수 없는 시간의 근육이 자리 잡은 근대의 공간 안에 근대의 걸작이 모였다. 덕수궁 석조전의 동관과 서관에서 열리는 ‘한국근대미술걸작전: 근대를 묻다’전(23일∼2009년 3월 22일).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전시에선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오지호 등 한국미술사에 긴 발자취를 남긴 거장 105명의 작품 232점을 볼 수 있다.

전시는 미술의 렌즈를 통해 20세기 초를 조망한다. 박영란 학예연구사는 “격동의 역사 속에 묻혀 있던 근대인의 삶과 꿈속에 오늘을 이루는 원동력이 숨어 있음을 찾아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전시와 더불어 회화와 조각품의 보존 수복 과정을 공개하고, 근대의 카페를 재현한 공간을 마련해 ‘검사와 여선생’ 등 영화도 상영한다. 관람은 무료(덕수궁 입장료 별도). 02-757-1800

#근대의 삶

푸른색 두루마기에 중절모 차림의 남자. 붓과 팔레트를 손에 든 화가는 형형한 눈빛으로 관객을 바라본다. 이쾌대의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1948∼49)은 전통적 요소와 서구적 양식의 조화를 시도한 화가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드러낸다.

마티스를 연상시키는 붉은 색조의 색면에 간략하게 표현된 여인의 대담한 자세가 시선을 낚아챈다. 독학으로 공부한 임군홍의 ‘모델’(1946). ‘월북’의 낙인이 찍혀 긴 세월 잊혀졌던 화가의 존재감을 새삼 일깨워준 작품이다.

‘근대인’ ‘근대의 일상’ ‘근대의 풍경’ ‘근대인의 꿈’ ‘근대의 복원’ 등 5부로 구성된 이번 전시의 첫머리에서 만난 작품들이다. 서관 1층의 ‘근대인’에선 ‘개인의 발견’이 주제다. 이쾌대를 비롯해 고희동 문신 장욱진 등 화가의 자화상 및 신여성과 어린이들을 볼 수 있다. 이유태, 이인성 등의 화가는 ‘남녀칠세부동석’의 이데올로기를 벗어난 지식인으로서 신여성과 독자적 인격체로 취급받는 어린이를 그렸다.

근대의 일상과 풍경에서는 신문, 전기, 기차가 처음 등장했던 생활의 단면을 엿보는 동시에 미술사적으로 새로운 모더니티란 무엇인지를 짚어내고자 한다. 이상범의 ‘초동’, 오지호의 ‘남향집’, 임용련의 ‘에르블레의 풍경’에선 사의(寫意)에서 사생(寫生)으로, 무릉도원에서 일상의 풍경으로 변화하는 흐름이 포착된다.

2층에선 일상의 변화를 볼 수 있다. 아기를 등에 업은 단발머리 소녀를 담은 박수근의 ‘아기 업은 소녀’(1953), 부리를 맞댄 다정한 새 한 쌍을 담은 이중섭의 ‘부부’(1956), 창밖을 바라보는 아이를 원색의 색채로 표현한 이대원의 ‘창변’(1956) 등 걸작이 즐비하다. 전쟁과 피란 시절의 척박한 생활도 화폭에 담겨 있다.

#유토피아의 꿈

현실이 고단할수록 유토피아를 향한 꿈은 커져간다. 석조전 동관에서는 ‘근대인의 꿈’을 주제로 전시가 펼쳐진다. 이중섭의 ‘애들과 물고기와 게’(1950년대)는 불우했던 피란 생활 중에 그린 작품. 아이들의 순수한 웃음과 율동을 통해 이상적 세계에 대한 소망을 담고 있다. 천경자의 ‘굴비를 든 남자’(1964) 역시 소박한 행복을 꿈꾸었던 화가의 내면세계를 진솔하게 드러낸 대작이다. 김환기의 ‘영원의 노래’(1957)의 경우 서구적 근대를 벗어나, 동양적 근대를 구현하는 방법으로 전통의 재발견에 관심을 쏟은 작품으로 꼽힌다.

시련과 고난에 굴하지 않은 근대의 삶이 고여 있는 공간과 작품들은 박제된 풍경이 아닌, 살아 있는 근대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미술의 시각에서 굴곡 심한 우리의 근대를 돌아본 뒤 문득 ‘나의 근대’를 떠올려본다. 힘든 시간도 껴안는 용기와 더불어 ….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나태주의 ‘풀꽃’)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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