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호의 대양도전기③] “시계 필요 없어요”

  • 입력 2008년 12월 15일 11시 43분


비상식량으로 매일 연명…무료함과 사투

선상 생활은 어지간한 인내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버티기 힘들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장보고 호의 서너 평 남짓한 생활공간에서 남자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별로 없다. 불현듯 밀려드는 ‘지루함’도 참기 힘든 선상의 일상이다. 그저 담배 한대를 입에 물고 애써 머리를 텅 비우는 것 빼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

▼ 아침 7시, 기상

장보고 호의 아침은 7시부터 시작된다. 한 달이 넘는 항해를 하다보니 이제는 알람시계를 맞추지 않아도 자연히 눈을 뜨게 된다. 사실 장보고 호 선실에는 시계가 없다.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에서 시계는 어쩌면 그저 사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머리를 깎지 못해 덥수룩해진 머리를 손으로 가라앉히며 권영인(47) 박사는 “파도라도 높게 치는 날이면 기상 시간은 더 앞당겨 진다”고 했다. 어른 한 명 겨우 누울 정도 크기의 한 평이 채 안되는 선실에서 매일처럼 토막 잠을 잔지도 벌써 한 달여. 기지개조차 펴지 못하는 키 작은 선실을 나서는 권 박사의 입에선 자신도 모르게 “아이고” 소리가 흘러나온다. 맞은편 송동윤 씨의 선실에서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한참 들린다.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이 벌써부터 힘들게 만든다.

아침 세수나 양치질은 건성일 수밖에 없다. 물은 배에서 연료보다도 더 몸값이 높은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배에 딸린 물탱크 들어있는 18갤런의 물로는 채 일주일도 버티기 힘들다. 당연히 샤워는 상상조차 할 수도 없다. 집에 있을 때는 매일처럼 샤워를 했던 송 씨로서는 못 씻는다는 것만큼 참기 힘든 일은 없다. 그나마 시설이 좋은 ‘마리나’(선착장)에나 들어가서야 따뜻한 물로 피곤한 몸을 달랠 수 있다. 취재진이 가져온 물 티슈 봉지를 건네자 송 씨의 얼굴이 순간 활짝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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