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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9월 30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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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더!’ 주문에 신나는 ‘신신애 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24일 오후 서울 관악구 봉천동 관악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전국노래자랑’(KBS1 일 낮 12시 10분) 출연자 선발 현장. 감색 양복을 차려입은 백영광(56) 씨가 ‘비 내리는 고모령’을 부르기 시작한 지 20초나 됐을까. 심사위원이 한마디 한다.
“수고하셨습니다.”
떨어졌단 뜻이다.
“하하하∼ 연습도 안 했는데 잘 떨어졌지 아주, 큭큭큭.”
손녀를 업고 나온 백 씨의 아내가 강당이 떠나가라 웃는다.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잡으면 잘 부른다는 소리를 듣는 그에게도 ‘전국노래자랑’의 벽은 높았다.
이날 예심 지원자는 700여 명으로, 심사에만 8시간 가까이 걸렸다. 심사위원은 박태호 PD, ‘전국노래자랑’의 터줏대감인 김인협 악단장과 정한욱 작가 등. 박 PD는 “서울 송파구에서는 오후 1시부터 예심을 시작했는데 1100여 명이 몰려 다음 날 오전 3시까지 심사를 했다”고 말했다.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 박지은(23) 씨가 할머니에게서 빌린 ‘몸뻬’를 입고 무대에 올라 막춤을 추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언론사 입사시험을 준비하는 그는 “지하철 출입구에 걸린 ‘전국노래자랑’ 현수막을 보고 취업 스트레스를 풀러 나왔다”고 말했다. 이 무대에는 서울대에 다니는 김세연(19·환경재료학과) 씨가 함께 나와 듀엣을 이뤘다. 그는 “친척 누나의 꾐에 넘어갔다”고 말했다.
“거기서 ‘신신애 춤’ 한 번 더! 누나가 추임새 넣고!”(박 PD) “이리리 히요∼!”(박 씨)
듀엣의 무대에 분위기가 뜨기 시작하자 심사위원들도 나섰다. 예심 현장의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지원자들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심사위원들이 흥을 돋운다. 박 씨는 합격.
한 60대 할머니는 탈락을 뜻하는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소리를 듣고도 마이크를 놓지 않는다. 할머니는 막무가내식 열창에 힘입어 예심 합격증을 받았다.
사업을 하는 조정복(42·관악구 신림동) 씨는 “무대에 올라온 뒤에는 빈부와 지위를 가릴 것 없이 ‘땡’과 ‘딩동댕’으로 운명이 결정되지 않나”라며 “서민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느낄 수 있어 ‘전국노래자랑’에 출전했다”고 말했다. 조 씨의 운명은 ‘땡’이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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