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가 만난 사람]국민 캐릭터, 둘리 “요리보고~조리봐도~내 라이벌은 길동이 뿐”

  • 입력 2008년 9월 6일 09시 03분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만화 캐릭터는? 미키 마우스? 스누피? 나루토? 도라에몽? 키티? 포케몬? 케로로? 스펀지송? 모두 인기가 있다. 그러나 ‘가장’은 아니다. 그 영예의 왕관은 불과 몇 되지도 않는 우리나라 토종 캐릭터의 대표선수이자 25년간 성별과 세대를 떠나 한결같이 사랑받아온 초록색 아기 공룡 둘리에게 돌려져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각종 통계조사에 따른 ‘과학적’결과이거니와 실은 구태여 그런 것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우리들의 일상과 주변에는 둘리가 널려있다.하다못해 사람도 마찬가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스누피’‘도라에몽’ ‘로보트 태권V’로 불리기보다는 ‘둘리’란 별명을 가진 사람을 훨씬 더 많이 보아 왔다.

양쪽 볼 살이 조금 도드라진다 싶으면, 그 사람 별명은 굳이 물어볼 것도 없다. 오늘 인터뷰 대상은 다름 아닌 둘리다. 한국인터뷰 사상 최초로 사람이 아닌 동물(어쩌면 괴물?)을 대상으로 직격 인터뷰를 시도했다.

물론 실제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기에 둘리의 원작자 김수정 화백과 그의 캐릭터·애니메이션 회사 둘리나라의 도움을 받았다. 둘리측에서는 모든 질문에 대해 철저히 둘리의 시각과 어법으로 답변을 보내왔다.

- 1983년 소년잡지 보물섬에 첫 연재되었으니 올해로 25세. 호칭이 애매하군요. 그냥 ‘둘리’라고 하지니 어쩐지 결례인 것 같고, 요즘 스타일로 ‘둘리 님’도 좀 그렇고 … ‘둘리 씨’라고 부르면 될까요?

“사람나이로는 스물다섯 살이죠. 하지만 제가 사람이 아니어서 나이를 사람처럼 먹지는 않네요. 아직 몸도 마음도 1983년 처음 나왔던 때랑 똑같거든요? 보세요, 얼굴에 주름살 하나 없이 탱글탱글, 꼬리도 탱글탱글 … 호칭이랄 것도 없고, 그냥 ‘둘리야!’하고 불러주세요. 둘리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잖아요? ^^ ”

- 흠흠, 그럴까요? 요즘 둘리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많이 바쁘죠?

“요새는 새로 준비 중인 애니메이션 준비로 눈코 뜰 새가 없다니깐요. 둘리 아빠 김파마 선생님(김수정 화백)과 같이 오랜만에 새 애니메이션을 하려니깐 그림도 그려야지 … 음악도 새로 골라야지 … 목소리도 조금 바꿔볼까 싶고, 얼굴도 세련되게 고쳐볼까 생각 중이에요.”

- 둘리는 공룡이지요. 요즘 어린이들은 우리들이 어렸을 때와 달리 공룡에 대해 무척 관심이 많고, 그런 만큼 상식도 풍부하더군요. 그런 점에서 어린이들은 ‘둘리는 과연 어떤 공룡인가?’라는 질문들을 많이 하고 있어요. 일설에는 케라토사우루스라는 얘기도 있던데?

“전 공룡이에요. 일부 어린이들은 제가 무슨 강아지 종류로 알고 있는데 훌륭하고 어엿한 공룡입니다. 그 중에서도 케라토사우루스 맞습니다. ‘뿔 달린 공룡’이라는 뜻이에요. 제 얼굴에 뿔 보이시죠? 이거, 코가 아니고 뿔이거든요?”

- 그렇군요. 그런데 만화를 보면 둘리의 엄마는 어쩐지 브라키오사우루스처럼 보입니다. 목이 길고 몸집이 크며 온순한 성격이지요. 엄마와 아들이 다른 종의 공룡이라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혹시 둘리는 입양아인가요?

“앗, 그런가요? 나만 몰랐나? 엄마 만나면 물어봐야겠네. 사실은 김파마 선생님이 저를 그릴 때 육식공룡인 케라토사우루스를 모델로 그렸는데요, 그 후 엄마를 그리면서 제가 케라토사우루스라는 것을 살짝 잊어버리셨대요. 다정한 이미지의 공룡을 찾던 중 초식공룡인 브라키오사우루스를 모델로 엄마를 그리신 거죠.(기자님, 날카로우시넹 -_-)”

- 둘리의 몸은 왜 초록색이죠? 초록색 공룡이 실제로 있습니까?

“원래 둘리는 흑백만화여서 색깔이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김파마 선생님이 컬러 작업을 하실 일이 있어서 짙은 갈색을 칠했는데 만화 편집장님이 ‘하필 똥색이 뭐냐?’하셨대요. 그래서 어린이들에게 친근하고 자연을 대표하는 초록색 둘리가 되었다네요. 다행이죠? 검정색 둘리가 아니어서. ^^ ”

- 둘리는 친구들이 많지요? 작품에 등장하는 친구들은 모두 개성적이고 독특한 캐릭터로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친구들에 대해 직접 소개를 해 줄 수 있을까요?

“집주인 (고)길동이는 저 좀 구박 고만했으면 좋겠고요. 도우너는 매사에 불만이 많지만 이해심도 깊은 친구죠. 또치는 약간 허영심이 있어요. 하지만 귀여운 구석도 있지요. 희동이는 예쁜 짓만 하는 아기. 영희와 철수는 어린 아이들이지만 생각이나 하는 행동이 어른스러워요. 저를 길동이네 집에 살게 해 준 것도 영희, 철수죠. 아이고, 그때 걔들이 저를 주워오지 않았으면, 저는 어느 하늘 아래서 살고 있을지 … 흑∼”

- 저 역시 한 가족을 대표하는 가장으로서 고길동 씨가 안쓰럽기도 합니다. 이 말썽 많은 대식구를 먹여 살리기가 만만치 않을 텐데, 고길동 씨는 직업이 무엇이며 한 달 수입은 얼마나 되나요?

“글쎄요, 회사 다니는 것 같긴 한데 구체적으로 뭐 하는 양반인가는 미스터리네요. 제가 보기에는 평범한 회사원 같아요. 군식구들이 많아서 고생하고 있지요. 뭐, 반찬 수가 적은 거 보면 잘 벌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헤헤”

- 먹여주고 재워주는 고길동 씨를 평소 ‘길동아∼’하고 부르지요? 그러다 얻어맞기도 꽤 얻어맞았습니다만. 어른에 대한 이런 호칭문제로 한때 여성단체 등으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꿋꿋하게 고길동 씨에게 하대를 하는 이유는 뭡니까?

“뭐 사실 길동이가 안 고마운 건 아니죠. 쥐꼬리만한 월급에 군식구들 먹여 살리는 일이 장난 아니니까요. 그래서 안 됐다 싶기도 한데, 그럴 때마다 저를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쓴다니까요?(버럭) 게다가 나이만 해도 제가 최소 1억살이니까 할아버지도 엄청 할아버지죠. 오히려 길동이가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이 부족한 것 아니겠어요? 물론 길동이한테는 이런 말 비밀이에요, 크크. 그리고 저는 ‘길동아’라고 안 부르고 ‘아저씨’라고 잘 불러요. 도우너가 꼬박꼬박 ‘길동아’라고 하죠. 도우너는 길동이가 애완동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흐흐”

- 둘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대표캐릭터입니다. 이처럼 사람들로부터 오랜 동안 한결같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게 모두 다 제가 잘난 탓 아니겠습니까? 허허! (앗, 저기서 길동이가 째려보는군요) 외국산 애니메이션이나 만화가 많지만 역시 한국적인 정서와 웃음은 따로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마 저와 제 친구들이 우리 문화적 코드와 맞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 둘리의 만화를 처음 보고 자란 세대가 어느덧 30∼40대의 장년이 되었습니다. 아저씨, 아줌마 팬들이 많지요?

“지난 7월 강남 코엑스에서 캐릭터페어라는 행사가 열렸거든요? 둘리극장을 만들어서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보여드렸는데 정작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이 더 많이 오시더라고요. 이번에 새로 방송하는 ‘New아기공룡둘리’도 어린 친구들보다 ‘어른 친구’들이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요. 아아! 저도 슬슬 나이를 먹어가는 걸까요? ^^ ”

- 둘리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좋아하는 사람은 또치, 도우너, 희동이, 마이콜, 영희, 철수(길동이 빼고!). 좋아하는 일은 뒹굴거리기. 취미는 길동이 괴롭히기. 좋아하는 음식은 라면이에요. 애니메이션에 나오거든요? 가장 싫어하는 음식이요? 길동이가 주는 ‘눈칫밥’. 흑흑”

- 원작자인 김수정 화백은 젊어서 가난으로 많은 고생을 하다가 둘리 덕분에 큰 성공을 거두게 되셨지요. 둘리에게 개인적으로 감사의 표시를 하시던가요?

“김파마 선생님한테 따로 뭐 받은 건 없고요. 그나저나 김파마 선생님은 별로 성공하신 거 같지 않던데 … (김파마 아저씨, 성공하셨어요?) 아직 성공 못 하셨다는데요? ^^ ”

- 둘리 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인기 순위를 매겨보면 재미있을 것 같네요. 누가 가장 독자들한테 인기가 있을까요?

“다들 자기 인기가 최고라고 주장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캐릭터 인형판매 순위를 보면 역시 제가 1등(에헴!), 2등은 도우너구요, 3등은 희동이, 4등 또치, 마이콜이 5등이에요. 꼴등이요? 누구겠어요? 길동이 아저씨죠.”

- 만화작품과 애니메이션 외에도 둘리의 활약은 그야말로 종횡무진 다방면에 걸쳐 있지요. 조금 소개해 줄래요?

“지금도 많지만 앞으로는 더욱 다양한 캐릭터 상품에서 제 모습을 보실 수 있게 될 거에요. 현재 40여 개 회사에서 1000여 종류의 둘리 상품을 만들고 있거든요. 할인점의 문구, 팬시용품 중에서도 상당수가 둘리상품이에요. 이제 곧 둘리빵이랑 음료수도 나올 거거든요? 내년에는 뮤지컬도 나오고, 영화관에서도 둘리를 보실 수 있을 거예요.”

- 세계적으로 널리 사랑받는 만화주인공 캐릭터들이 많지요. 혹시 둘리 마음에 ‘이 녀석은 내 라이벌이야’하는 대상이 있을까요? 혹시 미키마우스?

“제 경쟁상대는 역시 길동이지요, 크크. 세계적인 오픈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www.wikipedia.org) 에도 저의 ‘적(enemy)’이 길동이로 되어 있더군요. 요새는 국내 캐릭터들도 열심히들 하고 있고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도 해서 선배로서 참 기분이 좋다고나 할까요? 외국 캐릭터들아 다 덤벼라! 호잇∼!”

- 인터뷰에 응해주어서 고맙습니다. 그럼 안녕히.

“어? 벌써요? 그나저나 요즘 길동이네 집에서 눈칫밥 얻어먹자니 서럽고 배 고프네요. 기자 아저씨, 저 자장면 사주세요, 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