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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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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 “대통령 사태 잘모르는 듯… 실무진 일 미뤄”
정부의 종교 편향 논란에 대한 불교계의 반발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사태의 핵심인 어청수 경찰청장의 거취를 놓고 정부, 특히 청와대와 불교계가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예방을 받는 자리에서 범불교도대회 이후에도 누그러지지 않고 있는 불교계의 입장을 전했다.
지관 스님은 “세간에 (최근 사태를) 종교 간 갈등의 문제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으며 일부 공직자의 종교 편향 문제가 핵심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이를) 정확히 모르는 것 같고 청와대 등 실무선에서 서로 남의 일로 미루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어 청장의 경질을 거론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이어 “(공무원들에게) 국론 분열보다 더 나쁜 일이 어디 있느냐”면서 “일부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종교인의 종교 편향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유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이 공직자들의 종교차별 금지 입법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고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관계법령 개정 및 공무원 교육실시 등을 주도적으로 챙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는 불교계와 한나라당 내에서도 제기되는 어 청장 경질에 대해선 청와대의 불가 방침 때문에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어 청장 경질은 아직까지 현실적으로 거론되는 바가 없다”며 “여러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오해가 불식되면 논란이 가라앉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건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이고 터널의 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있는 것이다. 오해가 있고 그게 풀리면 진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불교계의 정서는 이해하지만 법 위반 행위 등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어 청장을 임기 도중 경질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내부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또 치안 총수로서 나름대로 본연의 임무를 수행한 어 청장을 경질할 경우 경찰 조직과 공직사회의 동요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대신 청와대는 여당 내에서까지 여론 악화를 우려해 어 청장 퇴진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현실을 감안해 이 대통령이 ‘적절한’ 수준에서 불교계의 오해를 풀 수 있는 언급을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9일 ‘대통령과의 대화’ 또는 그 전에 이 대통령이 회의석상에서 말하거나,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 등을 만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한편 어 청장은 이 문제로 자진 사퇴할 의사가 없음을 재확인했다.
경찰청 최광화 대변인은 4일 “어 청장은 참모회의에서도 추석 명절 전후 민생치안에 주력하고 이번 (종교 편향 논란) 사태에 대해 추호도 흔들림 없이 경찰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줄 것을 당부했다”고 밝혔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